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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김봉진 대표 "내 것 내놔야 불평등 해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개인 돈 100억원 사회 환원과 네이버로부터 350억원 투자 유치.
지난주 화제가 됐던 이 두 가지 뉴스 모두 음식배달 1위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서 나왔다.
거액의 돈을 선뜻 내놓는 일과, 대규모의 투자금을 끌어오는 일. 돈의 흐름만 보면 상반되는 두 가지 일은 왜,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을까.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역 인근 우아한형제들 본사에서 만난 김봉진(42)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다산 정약용 이야기부터 꺼냈다.
"두 달 안식 휴가 동안 남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전남 강진 쪽을 지나다 우연히 '다산 유배지'라고 쓰인 이정표를 봤다. 아이들(중1, 초2)에게 좋은 공부가 되겠다 싶어 들렀는데 거기서 '재물을 숨기는 방법 중에 베푸는 것만 한 것이 없다'는 글귀를 보게 됐다. 글귀를 본 순간 마흔두살에 유배 온 다산이 같은 나이가 돼 그곳에 들른 나게 들려주는 말 같다고 생각했다. 1년 가까이 해오던 고민(재산 사회 환원)이 거기서 결론이 났다."

"기업인에게 돈은 독"이라는 말 늘 되새겨 #"이번 기부는 더 좋은 기업 되기 위한 해독작용" #누구든 누군가 보다는 부자, 기부 동참을" #"내년에 삶의 질이 달라지는 배달 서비스 내놓을 것"

배달의 민족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O2O(온·오프 연계 서비스) 업체로 꼽힌다. 기업의 가치를 크게 올려, 그 지분을 팔아 사회에 환원환다면, 그에게 사업의 목적은 기부일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지만 '돈에는 독이 담겨 있다'는 지인의 말을 늘 되새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부로 크게 해독을 할 수 있게 됐다"며 "독소를 쌓지 않고 가야 더 좋은 기업, 기업인으로 오래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민은 창업한 지 7년이 됐지만 지난해 들어서야 적자를 벗어났다. 그러나 마이너스 경영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보이지 않게 꾸준히 사회 사업을 해왔다. 옥수동 한 교회가 실시한 독거노인 안부 확인을 위한 우유배달 서비스에 동참한 게 대표적이다. 현관에 우유가 두 개 이상 쌓이면 노인의 안부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서비스에 배민이 돈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2015년 골드만삭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때였다. 투자심의에 참여한 의원들이 회계장부를 들여다보고는 이 대목을 꼬치꼬치 물었다. 적자기업이 무슨 사회 사업이냐는 우려였다. 당시 부끄러운 마음에 사업 취지를 설명했는데 몇 달 뒤 투자심의에 참여했던 심의위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원들이 사재를 1인당 약 2000만원가량 내 2억원을 모았다며 "우유배달에 써 달라"고 부탁해온 것이다. 그는 "이분들의 동참으로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사업'이라는 사단법인이 출범할 수 있었다"며 "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하던 우유배달 사업은 현재 1300명 까지 대상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기업인은 180억원을 기부했다가 무려 140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았다. 이를 계기로 기업인들의 기부가 활발해지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 대표는 "기업인이 경제권과 경영권을 분리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가 도입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팔아 사회에 환원하려 하면 곧바로 경영권 걱정을 해야 하는 게 사실"이라며 "미국에서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처럼 거액의 기부가 가능한 것은 창업자나 기업인에게 한 주당 여러 표(의결권)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한 데 대해서는 비즈니스적 이해관계로 설명했다. "배달음식점 정보에 대한 양질의 검색 결과가 필요한 네이버와, 인터넷 관련 사업에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우아한형제들이 윈윈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최근 인공지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두 회사가 손을 잡으면 AI 스피커에 말로만 주문해도 집으로 음식이 배달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는 구체적 언급 대신 "내년에 고객 삶이 확 달라질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며 "내년에만 수백명을 새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보기술(IT) 관련 창업자들에게는, 적은 인력으로 큰돈을 번다는 오해가 따라다니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많다"며 "최근 경력직이 아닌 초임 개발자에게도 연봉 5000만원 내걸고 채용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아한 형제들에는 모두 5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 말을 꼭 써달라"며 다시 기부 얘기를 꺼냈다.
"부(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모든 이들이 '많이 가진 사람 것을 빼앗는 일'에만 관심을 둔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나보다 덜 가진 이를 부유하게 만들면 불평들이 해소될 수 있지 않나. 누구든 누군가 보다 가난하지만, 또 누군가 보다는 부유하다. 사회 전반에 기부 문화가 확산되기 바란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김봉진 대표=1976년 전남 완도 출생.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네오위즈·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2011년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한 뒤 직원 500명이 되는 기업으로 키웠다. 2014년 청년기업인상 대통령상, 2017년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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