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창작 오페라 '시집가는 날' 국내 초연 않고 외국 직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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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통 혼례 장면에 해학과 풍자를 담은 작품을 외국서 공연하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오퍼에서 위촉한 것도 아닌데 서울 무대도 거치지 않은 작품을 유럽서 초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독일 공연에 대한 현지 반응을 참조해 작품을 일부 수정한 뒤 10월 서울 무대에 올리겠다는 발상도 어색하다.

월드컵 본선 이전에 공연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일정을 앞당겼을 수도 있다. 해외 진출용으로 기획된 작품이어서 처음부터 외국의 반응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용과 해외 진출용 작품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서울서 성공한 작품이 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서울 공연을 위한 시연회를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는 식이 된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돈을 대고 만든 작품이니 한국서 먼저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굳이 '시집가는 날'로 우리의 풍물을 보여주고 싶다면 86 아시안게임 문화축전에서 초연된 메노티의 작품도 있고, 93년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기념공연에서 초연된 홍연택의 오페라도 있다.

국내 초연을 거치지 않은 설익은 작품을 수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초연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투란도트'와 '라 트라비아타'를 서울 무대에 올린다. '투란도트'는 2004년 프로덕션의 재탕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너무 자주 상연돼 식상한 레퍼토리다. '시집가는 날'의 독일 공연에 너무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좋지만 명분을 내세우다가 실속을 놓칠까봐 걱정이다.

프랑크푸르트 오퍼의 홈페이지(www.oper-frankfurt.de)에는 '시집가는 날'이 세계 초연이라는 언급이 없다. 프랑크푸르트 공연이 세계 초연임을 안다면 현지 청중도 아마 놀랄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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