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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왕의 남자'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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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왕의 남자'가 이처럼 예상 밖 돌풍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양하다. 우선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멀티코드'가 통했다는 것이다. 각 세대가 자기 식으로 영화를 읽게 하는 나름의 코드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예쁘장한 이준기의 외모가 10, 20대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리고 30대는 연민, 40대 이상은 정치 풍자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간의 흥행문법이던 분단과 전쟁, 나아가 민족주의를 극복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 사회 특유의 쏠림 현상에다 입소문 덕을 봤다는 주장도 빼놓을 수 없다. 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연출과 스토리가 좋으면 관객이 호응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한국 영화의 저력을 확인한 '왕의 남자'의 이 같은 쾌거에 누구나 가슴 뿌듯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 1000만 명'을 남다른 눈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관객=표'로 인식하는 대권 주자들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 모두가 자기를 찍는다면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 생각할 테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왕의 남자'에서 뭘 좀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답은 이미 전문가들이 분석한 성공 이유에 거의 나와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웬만하면 제작비가 100억원을 넘는 요즘 충무로 영화판에서 40억원은 결코 큰돈이 아니다. 반면 제작비 150억원에 스타들까지 출연했던 한국 영화 '태풍'은 고전했다. 이는 돈과 배우의 인기가 흥행으로 직결되던 시대가 지났음을 웅변하고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천문학적인 선거비용을 쏟아 부어 봤자 이제 유권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금권선거 풍토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후보들은 '실탄'의 위력에 혹하게 마련이다. 돈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시대임을 잊지 마시라.

둘째 이 영화가 민족주의를 극복했다는 대목을 잘 음미해 보시라. 보통 대중은 민족이니 통일이니 하는 중후장대(重厚長大)한 명제보다는 하루 먹고 사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북풍'이니 하는 허튼 짓은 이제 대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유권자들이 성숙했다. 특히 우리 사회 중간세대로서 정치적 응집력이 높은 30대가 '연민'이란 코드에 열광하고 있음을 놓치지 마시라. 연민(Sympathy)이란 말 그대로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서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민을 위한다며 결과적으로 서민을 더 못살게 하는 이 정권의 여러 정책에 정작 서민은 분노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현 집권세력에 실망한 젊은 세대가 급속히 보수.우경화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참고하시라.

마지막으로 영화가 좋으면 관객이 몰린다는 아주 평범한 진실에 주목하시라. 좋은 후보가 되라는 말이다. 좋은 후보란 결국 능력과 경륜, 비전을 갖춘 인물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입소문이 나고 쏠림 현상도 생긴다.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에게 '왕의 남자' 영화표 사듯 주저 없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유재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