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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인간·AI 대결 아닌 함께 가야할 동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딥 씽킹

딥 씽킹

딥 씽킹
가리 카스파로프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인간이 강한 것 컴퓨터가 약하고 #컴퓨터가 강한 것은 인간이 약해 #서로 소통·협업해야 미래가 풍요

지은이 가리 카스파로프는 한때 ‘인간 지능의 승리’와 동의어로 통했다. 러시아 출신으로 1985~2000년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다. 두뇌와 전략을 겨루는 체스는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력을 대표하는 게임이다. 컴퓨터가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일상이 되기 시작한 1996년 그는 ‘딥 블루’라는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과 맞붙어 당당히 승리했다. 당시 세계는 기계인 컴퓨터에 대한 인간과 인간성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않았다. 서로 연결된 8대의 PC로 가동된 체스 프로그램은 이듬해 열린 재대결에서 승리했다. 인간이 공식 두뇌 게임에서 기계에 처음으로 당한 쓰라린 패배다. 컴퓨터 입장에선 체스 세계 챔피언인 인간에게 거둔 첫 승리로 기록된다.

카스파로프는 제대로 능력을 갖추게 된 컴퓨터와 본격적으로 두뇌 싸움과 전략 겨루기를 사실상 처음 해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으며, 정신적으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도 않는 컴퓨터의 싸늘한 촉감을 온몸으로 느껴본 인물이다. 그의 경험은 미지의 세계인 달에 가본 우주비행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설의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협업 대상“이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전설의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협업 대상“이라고 말한다. [중앙포토]

2005년 체스계에서 은퇴해 시민운동과 글쓰기를 하는 그가 인간과 컴퓨터에 대해 입을 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카스파로프를 누른 프로그램보다 더욱 강력한 체스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무료로 설치하고 있다. 더욱 발달한 인공지능(AI)이 우리 생활 한복판으로 스며들고 있다. 컴퓨터를 만든 인간이 바로 그 컴퓨터에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컴퓨터의 골수를 직접 대면해본 지은이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AI로 대표되는 컴퓨터는 인간 지성과 협업할 대상이지 인간의 지배자나 경쟁자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인간은 AI의 도움을 빌려 자신의 특질인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간과 기계의 능력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더욱 풍요롭고,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창의성을 놓고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다’, ‘아니다. 컴퓨터도 발휘할 수 있다’라는 논쟁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인간과 컴퓨터를 비교하거나 서로 경쟁하는 것 자체에도 회의적이다. 컴퓨터는 애초에 심리가 없기 때문에 심리전을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이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컴퓨터는 인간이 갖지 못한 ‘완벽한 계산’은 할 수 있다. 인간을 넘어서는 대단한 능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계산능력만으로 인간 세상을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는 없다. 결국 그러한 계산의 결과를 활용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인간의 몫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이 울림을 준다. 인간이 인간다운 본질적인 이유는 작업 능력이 아니라 지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컴퓨터를 바탕으로 인간성의 본질을 짚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말한 ‘인간이 강한 것은 컴퓨터가 약하고, 컴퓨터가 강한 것은 인간이 약하다’라는 ‘모라벡의 역설’을 지적한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전문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것처럼, 컴퓨터가 지능(IQ) 검사에서 고득점을 하기는 쉬워도 갓난아이 수준의 인지나 행동을 따라 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체스 게임에서 컴퓨터가 인간의 고단수는 읽어도 로봇팔을 이용해 체스 알을 정확한 위치에 놓는 간단한 일은 여전히 순조롭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는 경계와 대결이 아닌 소통과 협업의 길만 남았다는 지은이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기술진보의 본질은 고민하되 ‘인간’을 과소평가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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