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째 되풀이 된 대통령 탈당 …강제 출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黜黨)을 결정했다.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논란 끝에 홍 대표가 결정하기로 정리된 후 8시간 여 만의 결론이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혹은 퇴임 후 소속 정당을 떠난 일곱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87년 헌법 체제에서의 모든 대통령의 말로였다. 대개 떼밀리어서 탈당하곤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출당까지 당했다는 점에서 첫 사례다.
처음으로 탈당한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88년 11월 23일 국민에 대한 사과 담화를 발표한 후 탈당계를 작성해 28일 오후 민정당에 제출했다. 전 전 대통령은 탈당계에 ‘본인은 민주정의당을 탈당합니다’라고 쓰고 ‘88년 11월23일 전두환’이라고 자필 서명했다.
87년 헌법 체제의 첫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도 14대 대선을 석 달 앞둔 1992년 9월 민자당 명예총재직을 내려놨다.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갈등이 결정적이었다. 대선후보가 된 YS은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의원 등 민정계를 밀어내고, 민주계를 전면에 내세우며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와 결혼한 최태원 SK 회장 측에 이동통신 사업권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영향을 끼쳤다.
그랬던 YS도 탈당 압박을 피해가지 못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회창 전 총재는 그해 10월 YS의 탈당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 전 총재는 “김 대통령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공명정대하게 관리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당적을 떠나 객관적 처지에서 이번 선거를 관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또 “저의 경선자금은 물론 92년 대선 자금에 관한 의혹도 불법이 있다면 검찰이 철저하게 조사해달라”며 YS을 정면 겨냥했다.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하겠다고 밝힌 게 갈등을 폭발시킨 계기였다. YS 측는 “대선의 공정 관리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신한국당 당적 보유 문제는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지만 결국 그해 11월 탈당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이른바 ‘홍삼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의 비리 의혹이 확산되자 2002년 5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DJ는 훗날 자서전에 그 시절을 “아들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대 거듭 사과했다. 그렇게 내 정치 인생이 담겨 있었던 민주당을 떠났다”며 “마냥 혼자 있고 싶었다. 우리(DJ와 이희호 여사)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차례나 탈당하는 기록을 쓰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9월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하지만 임기 말 레임덕으로 인한 권력 누수와 함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여권 내부에서 탈당 압박이 가시화됐다. 탈당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국 2007년 2월 대선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며 탈당을 선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당적을 유지하는 걸 대통령 문화를 바꾸는 길 중 하나로 여기곤 했다. 그러나 퇴임 후 4년 만인 올 1월 친이계와 비박계 등 일부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하자 자신도 당적을 정리했다. 이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국립현충원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직 대통령이 이만큼 했으면 오래 했지 않았느냐”면서 “정치색을 없앤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직 대통령들과 달랐다면 자발적으로 탈당이란 점이다.
유성운·백민경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