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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전막후 협상, 정의용-양제츠 고위급 핫라인, 실무라인에선 남관표-쿵쉬안유 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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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과 중국 외교라인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 이후 3개월 동안 물밑 교섭을 벌여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6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며 미소 짓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6일 오전(현지시간) 베를린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며 미소 짓고 있다. [중앙포토]

여러 차례 접촉의 결과 우리 측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배치를 둘러싼 문제 해결에 집중하면서 중국의 19차 공산당 대회(10월 18~24일)를 한·중 관계 분수령으로 보고 외교안보 역량을 집중하자는 결과가 논의됐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고위급·실무 외교라인이 재가동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안보 라인이 여러 차례 서로 전화도 하고 중국에 직접 가기도 하면서 무너진 대중(對中) 외교 라인을 복원하고 신뢰를 쌓아왔다”고 말했다.

 고위급 채널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간 핫 라인이 가동됐다. 두 사람은 지난 7월 한·중 정상회담 당시에도 30분간 따로 만나 한·중 관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양 위원의 경우 시진핑 2기 체제에서 공산당 핵심지도부인 25인의 정치국원에도 진출하는 등 외교사령탑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평가가 많다.

임종석 비서실장(오른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가운데),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9월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임종석 비서실장(오른쪽)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가운데),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9월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8월부터는 남관표 안보실 2차장과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본격적인 실무 접촉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드 문제의 해결은 기존에 일상적인 외교 방법이 아니고 ‘정치적 타결’이 되어야 하는 만큼 최고 결정권자들과 소통하면서 신속히 입장이 조율될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협상 채널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은 사드 문제가 국방부 등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로 협상 창구가 정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측이 앞으로도 청와대와의 직통 채널을 고집할 경우 외교부가 협상 라인에서 소외되는 ‘외교부 패싱’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 브리핑에서 “금번 협의 과정 전반에 걸쳐서 외교부가 우리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 7일 열린 북한 정권수립일 행사에 참석한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사진 JTBC 캡처]

지난 10월 7일 열린 북한 정권수립일 행사에 참석한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사진 JTBC 캡처]

 중국 측 쿵쉬안유 부장조리는 중국 외교부에서 한반도를 포함해 아시아 문제를 담당해온 인물로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태어난 조선족 출신이다. 2004년 한국과 중국간 동북공정(東北工程) 협상과 2014년 센카쿠열도(尖閣列島)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 협상 등에 참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 외교부 내에서 아주 터프하고 실력 있기로 알려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시 주석이 주변 측근들에게 “문 대통령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사실도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사드 문제는 배치 과정에서 최고위 당국자들이 언급한 상황을 얼마 되지 않아 뒤집은 데서 비롯된 신뢰의 상실이 큰 문제였다”며 “중국 측에서 ‘문재인 정부는 신뢰할 만 하다’‘여러가지 대외 문제에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신뢰할 만 한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과도 사전 조율을 해나갔다. 또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사드가 제3국을 향하지 않는다’는 말을 중국 측에 하는 등 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 해소에 기여했다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중국인민은행이 지난 10일이 만기였던 한ㆍ중 통화스와프 연장에 합의하면서 청와대는 긍정적인 전망을 갖게 됐다고 한다. 또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한·중 통화스와프 만료 기한 이전에 이미 양측의 사인이 끝나 있었다”며 “그러나 당 대회 이후로 발표를 미뤄달라는 중국 측의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말했다.

지난 8월 22일 오후 김정숙 여사는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치바이스 전시회를 관람했다. 전시 관람에는 주한 중국 대사 추궈홍, 중국 대표 화가 한메이린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은 한메이린 작가의 작품집을 선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8월 22일 오후 김정숙 여사는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치바이스 전시회를 관람했다. 전시 관람에는 주한 중국 대사 추궈홍, 중국 대표 화가 한메이린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진은 한메이린 작가의 작품집을 선물 받고 있다. [중앙포토]

 물밑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내조 외교’도 역할을 했다. 김 여사는 지난 8월 한ㆍ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 특별전을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부부와 함께 관람했다. 김 여사는 한달 뒤인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추 대사 부부를 접견해 치바이스의 도록 전집을 선물로 받으면서 “양국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주변에 “여사님이 치바이스 전시전을 관람하고 추궈훙 대사가 청와대를 방문했던 것이 협상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앞으로 한ㆍ중 정상회담, 한ㆍ중ㆍ일 정상회담 등 연말ㆍ연초 외교 일정들이 많이 있다”며 “한·중 양국은 소통 채널을 잘 활용해 외교 동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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