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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떴다, 국악인 팬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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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임동창(47)씨는 외모부터 별나다. 평소 시원한 민머리에 헐렁한 고무신 차림만 봐도 그렇다.

고교 시절 출가해 절 생활을 하다가 첫사랑 몸살에 환속(還俗)을 감행하기도 했다. 스물 아홉에 서울시립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것, 무대에 서면 연미복 대신 부인(디자이너 이효재)이 만들어 준 신식 한복을 걸치는 파격도 '컬트 국악인'답다.

임동창 식의 생동감 넘치는 음악행위는 3년 전 EBS-TV 기획강연 '임동창이 말하는 우리 음악'방영 때 도올 김용옥 못지 않은 인기를 모았다. 그런 그가 최근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팬클럽이 결성됐다는 통보였다. 그의 음악적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 50여명은 30일 KBS 홀에서 임씨의 팬클럽을 발족키로 했다.

팬클럽 이름은 '동창이 밝았느냐'. 대중스타들에게 집중됐던 팬클럽이 국악에 생긴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더욱이 회원들은 10대들 중심의 '오빠부대'와 달리 장관 출신에 변호사.기업대표 등 거물급이다.

28일 오후 서울 사간동에서 열린 예비모임도 분위기가 별났다. 스타에 대한 열광 대신 한 예술가에 대한 속 깊은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 '쟁이골'에서 연락을 받고 잠시 올라온 임씨와 팬클럽 운영위원 일부의 상견례를 겸한 이 모임에서 회원들은 팬클럽이 무엇보다 한 예술가에게 힘을 보태는 후원회를 겸한 것이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지난해 봄 임선생과 일본 여행을 했었는데, 독특한 캐릭터에 우선 반했지요. 나중에 깨달은 것은 이 분이 지금 진행 하는 작곡 프로젝트가 우리시대 문화의 핵심이라는 점이죠. '수제천' '영산회상'등 정악(正樂)을 현대 음악언어로 탈바꿈하는 작업 말이죠."(팬클럽 사무국장 손광운 변호사)

이날 모인 이명희(디자이너).강석진(한국컨설팅그룹회장).오연석(더벤터캐피탈 대표)씨 등도 팬클럽의 서포터스 활동이 장차 '문화 중산층'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팬클럽 공동회장으로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과 정성진 국민대 총장이, 고문에 권옥연(서양화가).이시형(정신과 전문의).강석진씨 등 3명이 추대됐다. 특히 팬클럽 회원들은 시민문화모임인 '태평로 모임''일산문화포럼'등에서 활동해온 인사들이라서 응집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무대에서의 신명과 달리 평소 말수가 없는 편인 임씨가 쑥스럽고도 고마운 표정으로 자기 작업의 윤곽을 설명했다.

"지금 하는 작곡 작업은 정악을 어떻게 우리 시대 음악언어로 재창조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풀어내는 것이죠. 물론 정악 보존은 그대로 하되, 그 풍부하고도 멋스러운 자원을 외국의 그 어떤 피아니스트나 연주자들도 즐겨 연주할 만한 보편적인 작품으로 탈바꿈시켜 보자는 겁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정악은 조선조 때 대폭 정비됐다. 이 정악을 현대적인 언어로 재창조해낼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얘기다. 피아노 연주도 할 수 있고, 대규모 관현악 연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임씨는 KBS와 공동으로 추석맞이 특집 음악회 '임동창의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음악회는 어수선하고 살벌하기까지 한 사회 분위기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소박한 신념에서 마련됐다"는 게 임씨의 설명이다.

조우석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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