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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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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지난해 어느 출판사에 갔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머그컵을 보고는 웃었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거기에 담긴 커피를 마시면서 요즘 책이 안 팔린다더니 정말 안 팔리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그 문구를 보고 단순히 웃지 못한다. 내가 쓴 몇 권의 책이 누군가의 손에 가서 닿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만 “아아…” 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대학에서 연구하는 동안 책을 그렇게 많이 사지는 않았다. 웬만해서는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고 논문에 정말 필요한 것들만 제한적으로 구입했다. 그러면서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핑계와 함께 나중에 정규직이 되면 그때는 책을 더 사야지 하는 열없는 다짐만 했다. 그래서 “아아, 책 좀 사줘”라는 나의 말에 “술이나 한잔 살게”라고 답하는 친구들에게, 별다른 대가 없이 독서모임에 초대하고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내어 놓는 회원들에게 굳이 뭐라고 말을 보태지 않는다.

변방에서 10/28

변방에서 10/28

얼마 전부터는 한 권의 책이 상장된 주식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와 출판사가 책이라는 주식을 발행하고 독자들은 그것을 매수하고 보유하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대개 초판으로 2000부를 발간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작가의 책을 두 권 산다면 대략 0.1%의 지분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스무 권만 사도 시중에 나와 있는 그 책의 1%를 가진 ‘대주주’가 된다. 물론 1쇄가 모두 판매되고 나면 2쇄, 3쇄, 계속 책이 발간되겠지만 그러한 증자를 실행하기 이전 공모주로서의 ‘1판 1쇄’ 지분의 가치는 그대로 남는다.

오늘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는 한 주당 265만원이다. 시가총액만 340조원이 넘는 이 기업의 의미 있는 지분을 확보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지식과 예술의 주주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손쉽다. 당신의 책장에 꽂힌 이름 없는 작가들의 책은 언제나 0.1% 이상의 지분 가치를 가진다. 나는 주주들에게 어떤 배당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후원으로든 응원으로든 나의 책을 구매해 주신 분들께 무엇으로든 보답하고 싶다. 우선은 상장폐지 되지 않을 책을(주식을) 계속 쓰는 것으로 갚아나가려 한다. 책을 쓰고 만드는 모두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