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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남 아내가 이혼 안해주자 '청산가리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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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남에 집착한 여성의 광기어린 '청산가리 살인'…무기징역 확정 

2015년 1월 22일 새벽 4시경,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여성 A씨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발견자는 그의 남편 B씨(48)였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의 사인은 ‘청산염 중독’, 즉 청산가리에 의한 독살이었다.

내연남 차지하려 '이혼 공작' 실패하자 #청산가리로 내연남 부인 살해 계획 #1심 25년형에 2심 "약하다" 무기징역 #대법원도 "형량 과하지 않다" 확정

집에서 3분의 1쯤 먹다 만 소주가 발견됐다. 소주에는 청산가리가 희석돼 있었다. 마시면 10분 안에 숨질 수 있는 고농도였다. 병에는 남편 B씨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그는 이날 자정까지 회사에 남아 승진 심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다 탈락하자 술을 마신 뒤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 A씨의 시신에 남은 반응들을 비춰볼 때 B씨가 귀가하기 전에 이미 중독됐을 가능성이 컸다.

1유로 동전과 비교한 청산가리 치사량. 중독시 10분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 [출처=위키백과]

1유로 동전과 비교한 청산가리 치사량. 중독시 10분 이내에 사망에 이른다. [출처=위키백과]

두 번째 용의자가 지목됐다. 다름 아닌 B씨의 내연녀 한모(48)씨였다. 한씨는 B씨와 숨진 부인 A씨에게 이혼하라고 다그치던 중이었다.

경찰 수사 결과 한씨가 이날 밤 A씨를 찾아가 함께 집에 들어간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화면 속 한씨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난 0시 50분쯤 A씨의 집에서 나올 때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한 것도 확인됐다.

경찰은 한씨의 집과 사무실을 급습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에서 ‘청산가리 살인’ 등 정보를 검색한 기록이 확인됐다. 화공 약품 업자에게 청산가리를 사려 시도한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한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한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모든 정황과 기록이 한씨를 향하고 있었다. 1심 법원은 한씨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형이 약하다며 무기징역으로 높였다. 대법원 2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한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내연남에 대한 집착과 비뚤어진 사랑이 부른 참극이었다.

화목한 가정 차지하고픈 집착이 부른 참극

비극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 전(2012년) 남편과 불화로 ‘돌싱’이 된 한씨는 B씨와 그 해 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만나 은밀한 관계가 됐다. 한씨는 B씨의 단란해 보이는 가정이 부러웠다. B가 이혼한다면 그의 옆자리는 자신의 것이 되리라 기대했다. B의 불륜 사실을 그의 부인이 알게 하면 당연히 두 사람이 갈라설 거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반년쯤 지나 한씨는 B씨와 그의 부인이 통화하는 틈에 일부러 소리를 내어 B가 불륜 중이란 걸 들통나게 했다.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자신과 B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어 그의 부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부인 A씨는 가정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내연남을 차지하려는 집착에 눈이 멀어 내연남의 아내를 독극물로 살해한 40대 여성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중앙포토]

내연남을 차지하려는 집착에 눈이 멀어 내연남의 아내를 독극물로 살해한 40대 여성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중앙포토]

한씨는 뜻대로 되지 않자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에 의해 30분 만에 발견돼 생명에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한씨의 광적인 집착은 계속됐다.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B씨의 부인에 대한 ‘청부 성폭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씨의 어머니는 B씨에게 “우리 애가 자살 시도로 많이 다쳤고, 전에 당신 아이를 임신했다가 낙태까지 했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B씨와 그의 부인은 3억5000만원을 건넸고, 한씨는 ‘다시는 B씨를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줬다.

그러나 낙태했다는 주장은 거짓이었다. 각서에도 불구하고 한씨는 B씨와 다시 예전의 내연 관계로 돌아갔다.

검찰은 이 무렵부터 한씨가 은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봤다. 한씨는 그 해 7월부터 청산가리 구입을 시도하고, 관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B씨에게 이혼을 다그쳤다. 하지만 B씨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한씨의 심리를 분석한 대검 과학수사부 임상심리 분석 전문가는 “한씨는 감정기복이 크고 정서적으로 피상적이며 연극적(히스테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타인이 자신의 애정욕구나 의존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한데 욕구가 좌절되면 타인을 비난하고 분노를 폭발적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치밀한 계획과 범행 의도, 법원 “전형적 ‘모살’”

한 차례 자살소동이 끝나자 한씨는 범행 준비를 본격화했다. 경찰이 압수해 분석한 그의 컴퓨터에는 ‘청산가리살인범’, ‘청산가리로 죽이기’, ‘청산가리로 타살하는 법’, ‘청산가리를 몰래 먹이는 방법’ 등을 검색해본 기록이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에서 복구한 메모에는 일종의 ’범행계획 메모‘가 적혀 있었다.

‘목장갑 준비’, ‘복면 두 개 사기’, ‘긴 머리 가발 준비하기’, ‘신발 넣을 쇼핑백 가져가기’, ‘CCTV는 피해다닌다’, ‘장난감 주사기에 청산가리와 소주를 혼합한 것을 담고 막아 놓는다’

그 해 12월 한씨가 휴대전화에 저장했던 메모는 치밀했다.

청산가리 든 소주로 내연남 아내를 살해한 40대 여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청산가리 든 소주로 내연남 아내를 살해한 40대 여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중앙포토]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는 “이 사건은 범행을 사전에 치밀하게 숙고하고 계획하여 범행도구를 준비한 다음 의도한 범행을 실행에 옮긴 전형적인 모살(謀殺)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이미 살인을 모의하고 실행한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지만 한씨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재판 중에는 “A씨에게도 내연남이 있었다”는 등 근거 없이 망자를 모욕하기도 했다. 내연 관계를 정리하는 조건으로 받은 3억5000만원을 피해자의 딸 등 유족에게 돌려줄 생각도 없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형량이 약하다며 오히려 형량을 높여 선고한 이유다. 대법원도 "원심의 형량이 심히 부당해 보이지 않는다"며 한씨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법 재판부는 “피해자가 그토록 아끼던 어린 딸은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고 편부 슬하에서 양육되고 있다. 피해자의 딸이 피해자 무덤에 직접 남긴 묘비명은 피해자의 사망이 그 딸과 유가족들에게 남긴 상실감과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큰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한씨를 꾸짖었다.

A씨의 묘비에 딸이 남긴 글은 이렇다.

1초라도 더 보고 싶은 엄마…사랑해요…”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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