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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유태준 "北아내 만나러" 은신처에 오리발·스노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탈북자 유태준 은신처에서 나온 잠수 도구. [사진 전남 나주경찰서]

탈북자 유태준 은신처에서 나온 잠수 도구. [사진 전남 나주경찰서]

살인미수 전과로 보호관찰 중 정신병원에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다가 78일 만에 붙잡힌 탈북자가 두번째 재입북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에 있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건추적] 원룸 옥탑방 은신처에는 구명조끼와 오리발 등 '탈북 도구' #나주 정신병원 탈출 후 서울, 경기, 인천 돌며 일용직 근로 #인천 월미도에서 서해상으로 월북하려 사전답사까지 #경찰은 도주 당일 뒷산 수색 안하는 등 부실 수사

전남 나주경찰서는 19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잠적한 혐의(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탈북자 유태준(48)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유씨는 지난 18일 오후 6시35분쯤 인천시 남동구 원룸촌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현장에 잠복 중이던 경찰은 훔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유씨를 발견하고 검거했다. 나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유씨는 지난 8월 1일 오후 3시36분쯤 발목에 차고 있던 전자발찌를 훼손한 뒤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탈북자 유태준 은신처. [사진 전남 나주경찰서]

탈북자 유태준 은신처. [사진 전남 나주경찰서]

유씨가 은신처로 삼은 원룸 옥탑방에서는 구명조끼와 오리발· 스노클(물에 머리를 담근 채 숨을 쉴 수 있는 장비) 등이 발견됐다. 유씨는 스마트폰 한 대도 갖고 있었다.

옥탑방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곳으로 인천 남동경찰서 구월지구대에서 불과 1분 거리였다. 이번 사건 신고 보상금으로 1000만원을 내건 경찰은 코앞에 유씨가 살고 있었지만 까맣게 몰랐다. 유씨는 경찰에 붙잡힐 당시 “OOO들 왜 죄 없는 사람 잡고 그러냐”며 저항했다고 한다.

 유씨는 경찰에서 "정신병원에서 도주한 직후 서울ㆍ경기 지역에서 생활했다"고 진술했다. 서울 구로구, 경기 부천ㆍ안산을 거쳐 인천에서 숨어지냈다.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 나주의 정신병원에서 보호관찰 중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살인미수 전과 탈북자 유태준이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의 모습이 찍힌 CCTV 동영상 캡처 화면.

전남 나주의 정신병원에서 보호관찰 중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살인미수 전과 탈북자 유태준이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의 모습이 찍힌 CCTV 동영상 캡처 화면.

 유씨는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이유에 대해 “북한에 있는 아내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인천 월미도에서 서해를 통해 북한에 가려고 사전답사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피해 망상 증세가 있는 유씨는 “국가정보원과 남한 정부가 불법으로 나를 감금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유씨는 1998년 12월 탈북했다. 그러나 2000년 6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에 남아 있는 아내를 데려오겠다”면서다.2002년 2월 재차 탈북해 한국 땅을 밟은 유씨는 2004년 7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김정일 장군님 품으로 돌려보내달라”며 1인 시위를 했다. 그해 10월 자신의 아들 양육 문제로 말다툼 끝에 이복동생을 흉기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치료감호 10년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이 자신을 납치했다며 망상 증세를 보이던 유씨는 치료감호 기간이 끝나고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지난해 3월부터 전자발찌를 찬 채 병원에서 보호관찰을 받아왔다.
유씨가 검거되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도 드러나고 있다.

유씨는 “전자발찌 훼손 당일 병원 뒷산으로 도주해 숨어 있다가 다음 날 오전 산에서 내려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상경했다”고 진술했다.

유태준의 공개수배 전단.

유태준의 공개수배 전단.

경찰은 도주 첫날 병원 뒷산 수색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면서 당일 밤 뒷산보다는 주변 도로 수색에 집중했다”고 해명했다.

 유씨는 일용직으로 일하며 번 돈을 받을 때 필요한 통장을 지난달 7일 발급받은 사실이 포착되면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관련 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수사 초기에만 유씨의 금융 거래 내역을 확인하다가 이달 초에야 다시 파악에 나서 뒤늦게 유씨를 검거했다. 부실 수사로 초기 검거에 실패한 데 이어 실제 검거도 한 달 가량 늦춰진 셈이다.
 유씨는 병원에서 도주한 이후 타인 명의로 스마트폰을 만들고 주거지 계약을 했다. 유씨는 이용한 명의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공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노숙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는 우발적인 도주라고 주장하지만, 사전에 통장에서 100만원을 인출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며 "국보법(탈출 예비)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한 뒤 정확한 도주 경로와 방법, 조력자 유무 등을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나주·인천=김호·임명수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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