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서도 '여풍' 솔솔… 쿠웨이트, 여성에 첫 참정권 부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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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여성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 가고 있다. 지난 1월 이라크 총선에서 제헌의회 의석수 3분의 1이 여성에게 할당된 게 시작이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 요구가 거세지자 일부 국가에서 이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 첫 참정권 부여한 쿠웨이트=걸프해 국가 중 가장 먼저 여성의 요구를 받아들인 나라는 쿠웨이트다. 남성 100%의 쿠웨이트 의회는 19일 여성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부여했다. 49명의 의원 중 2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사상 최초로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부여받은 쿠웨이트 여성들은 의사당 앞에서 환호했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올해 초부터 거셌다. 여성들의 요구에 먼저 귀를 기울인 쪽은 왕족. 셰이크 자비르 알사바 국왕은 여러 차례 여성에게 포괄적인 참정권을 부여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의회는 번번이 이를 거부했다. 2주 전에도 정부가 제출한 이 법안을 부결했었다. 정부와 여권단체들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의회는 일단 지방선거에서만 참정권을 인정했다.

쿠웨이트 지방의회 의원 16명을 뽑는 선거는 약 6개월 내에 실시될 예정이다. 이 중 6명은 국왕이 지명하게 돼 있어 앞으로 6개월 후면 첫 여성 지방의회 의원이 등장할 전망이다.

◆ 바레인엔 여성 국회의장 등장=쿠웨이트 인근 섬나라 바레인에서도 여성이 사상 최초로 국회의장직을 수행했다. 19일 한 차례 회기를 담당한 데 불과하지만 이도 아랍권에서는 최초다. 당사자인 알리스 사만 의원은 기독교인으로서도 최초로 이슬람 국가의 의회 의장석에 앉았다. 바레인 일간지는 물론 범아랍 알하야트도 '역사적인'이라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했다.

사만 의원이 이날 의장석에 앉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의장과 부의장 2명이 모두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회법에 따라 가장 연장자인 사만 의원이 회의를 주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랍 언론이 관심을 가진 부분은 대부분 남성인 다른 의원들의 반응이었다. 박수로 환호했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남성 의원들은 의장석에 다가가 앞다퉈 기념사진을 찍었다.

상하원으로 구성된 바레인 의회에는 여성의원이 6명에 불과하다. 이 중 네 명은 국왕이 정치적으로 임명한 사례다. 바레인은 3년 전부터 여성의 의회선거 참여를 허용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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