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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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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도쿄총국장

오영환 도쿄총국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0일 동북 지방 3개 현을 돌았다. 이와테(岩手)현에선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대표 지역구에서 자민당 후보 지원 연설을 했다. 선거 고시일의 이례적 원격 일정이었다. 이와테는 한때 오자와 왕국으로 불렸던 곳이다. 오자와가 여야 실력자일 때 같은 당 소속 후보가 휩쓸었다. 2012년 오자와가 민주당을 탈당한 뒤론 영향력이 천양지차가 됐다. 자신의 지역구도 간신히 지키고 있다. 자민당은 오자와 끌어내리기를 작심한 듯하다. 연일 지명도 높은 정치인을 저격수로 투입하고 있다.

오자와는 10·22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반(反)아베 연대를 꾀했다. 중심축은 제1야당 민진당이었다. 1인 선출 소선거구제인 만큼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면 승리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만든 희망의 당이 민진당 의원을 선별 수용하면서 야권 연대는 물 건너갔다. 민진당은 희망의 당, 중도 좌파의 입헌민주당, 무소속으로 삼분됐다. 자유당도 한 가지다. 오자와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야권 연대는커녕 난립이 됐다. 자유당은 존속이 불투명하다. 오자와의 굴욕이다. 40대에 자민당 간사장을 맡아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그였다. 당 총재 후보 세 명을 면접할 정도였다. 민주당 집권(2009~2012년) 때는 최대 세력을 이끌며 총리와 이중 권력을 형성했다.

아베의 오자와 죽이기는 야권 연대의 싹을 아예 자르려는 시도다. 자민당에 오자와는 악몽이다. 오자와가 1993년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자민당을 탈당하면서 그해 비(非)자민 연정이 탄생했다. 자민당 일당 지배의 첫 붕괴였다. 오자와는 2009년 총선에선 민주당 간사장으로 자민당에 역사적 참패를 안겼다.

선거전 판세는 자민·공명당 절대 우위다. 야권 대분열의 필연적 결과다. 이대로는 자민·공명당의 만년 여당 구조다. 당초 오자와 정치 개혁의 비전은 정권 교체가 가능한 양당제 확립이다.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아 자민당이 복수로 당선되는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꾼 것은 그 때문이었다. 민주당 정권은 그 산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 교체도, 양당제도 요원해 보인다. 보수 자민당과 중도 공명당의 강력한 새 연정 방식이 뿌리를 내렸다.

오자와는 현재 16선으로 최다선이다. 이번에 당선되면 2년 후엔 의원 재직 50년이다. 초반 판세는 앞서고 있다. 그는 3년 전 본지 인터뷰에서 “한 번 더 정권을 바꾸는 것이 정치가로서의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력이 없다.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소선거구제는 외려 우파 쏠림 현상을 부르는 도구가 되고 있다. 오자와의 이단아 역정은 막을 내리는가.

오영환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