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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건강 회복 지름길 영양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퇴원 중증 질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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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뒷받침 절실
치료는 병원과 의료진에 의해 이뤄진다. 하지만 치료를 받았다고 환자가 바로 건강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한 과정이 더 남아 있다. 회복기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회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영양섭취’다. 이때의 식단은 환자에게 어떤 약보다도 소중하다. 충분한 영양섭취가 제때 이뤄져야 환자는 회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수술 등 중증질환 치료 후 퇴원한 환자는 영양 관리에서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퇴원 후 25~49%가 영양실조 #암 환자 사망 부르는 주요 원인 #영국·프랑스 영양식 비용 지원

최근 위암 수술을 받은 이모(49)씨는 자택에서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생활비와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아내가 일을 시작한 탓에 혼자 식사할 때가 많다. 그마저도 입맛이 없어 거르기 일쑤다. 불규칙한 식사로 체중은 회복되지 않았고 항암치료는 점점 힘겨워졌다. 입원 당시에는 병원 영양집중지원팀이 관리해 줬지만 현재는 사정이 다르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입원 당시 식사 대용으로 챙겨 먹었던 환자용 식품은 퇴원 후 더 이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담이다.

 이씨처럼 치료 후 영양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환자는 적잖다. 제때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기도 쉽지 않은데다 영양섭취 방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음식물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저혈당 증상이 생길 수 있어 초기에 하루 아홉 번에 나눠서 식사를 하게 한다”며 “암 같은 중증질환으로 수술을 받았거나 고령인 환자는 특히 영양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불량 땐 합병증 발생률 1.6배

회복기 환자에게 영양 관리의 필요성은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이때의 영양 상태는 회복 기간, 합병증 발생, 나아가 사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학계에 따르면 입원 환자의 30~50%, 암 환자의 40~80%가 영양불량 상태에 해당한다. 아시아정맥경장영양학회가 발표한 우리나라 병원 영양실조 유병률 조사에서는 25~49%의 환자가 퇴원 후에도 영양실조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암 환자의 경우 사망 원인 중 20~50%가 암 자체가 아닌 영양불량으로 인한 것으로 보고된다.

 영양 상태는 합병증 발생과도 연관이 깊다. 4000명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해외 연구결과 영양 상태가 정상인 환자는 합병증 발생률이 16.8%였던 데 비해 영양실조 환자는 27%로 1.6배 높았다. 퇴원 환자의 여건은 이보다 더 열악할 수밖에 없다. 반면 영양 관리를 제대로 하면 사망률이 44%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양 상태가 회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술 후 환자가 회복하려면 혈액이 돌면서 좋은 성분과 에너지가 해당 부위에 충분히 도달해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때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운동과 영양섭취뿐이다. 하지만 기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운동은 무리다. 당연히 영양섭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박 교수는 “영양섭취가 뒷받침돼야 그다음에 운동도 할 수 있고 수술받은 장기 등 몸이 회복할 수 있다”며 “회복기에 죽이나 미음을 많이 먹는데 이런 것만 먹게 되면 영양소 불균형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입원 환자에게만 건강보험 급여

그래서 환자의 영양 관리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입원 환자는 물론 외래 환자에 대해서도 영양 관리를 지원한다. 퇴원한 환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입원 환자에 비해 영양 관리가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에서는 환자의 정상적인 음식 섭취가 불가능할 경우 환자용 영양식에 대한 비용을 지원한다. 자택 치료 중인 외래 환자의 80%가 이를 통해 영양식을 제공받는다. 프랑스도 영양실조의 위험이 큰 만성질환과 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에게 환자용 영양식 제품 비용을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용 식품에 50%의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적용하고 있다. 이 같은 지원은 입원 환자에 대한 것으로 퇴원 후 자택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환자는 제외돼 있다. 국민영양관리법상 정부가 영양 관리를 지원하는 ‘영양취약계층’에서도 빠져 있다. 영양취약계층은 영유아·임산부·아동·노인·노숙인으로 국한하고 있다. 따라서 영양 관리 지원 대상을 넓혀야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교수는 “혼자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중증 재가환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환자용 식품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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