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北 '몰래 가동' 결의 위반?문재인 정부의 '개성공단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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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설 제기된 개성공단   (서울=연합뉴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내 19개의 의류공장을 은밀히 가동해 내수용 의류와 중국에서 발주한 임가공 물량 등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관련 북한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6일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흉칙한 수작질'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평에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공업지구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에 대하여 그 누구도 상관할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2017.10.7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동설 제기된 개성공단 (서울=연합뉴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내 19개의 의류공장을 은밀히 가동해 내수용 의류와 중국에서 발주한 임가공 물량 등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관련 북한 대외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6일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흉칙한 수작질'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평에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공업지구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에 대하여 그 누구도 상관할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2017.10.7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재가동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재산권 침해를 중단해야 한다”(6일, 통일부)는 항의나 “우리가 주는 전기는 없다”(9일, 통일부)는 해명 정도가 전부다. 개성공단 재가동이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는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①생산된 의류 수입한다면 결의 위반=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3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 19개 의류 공장을 은밀히 가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주로 외국에서 발주한 임가공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간 북·중 사이에는 중국산 원자재를 수입해 북한이 제조한 제품을 다시 중국에 되파는 의류 임가공 무역이 활발히 이뤄졌다. 중국해관(세관)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에 의류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은 2015년 약 8억 달러(약 9000억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달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5호는 북한산 섬유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여기에는 직물뿐 아니라 ‘부분적 혹은 완전히 완성된 의류 제품’도 포함된다. 개성공단에서 생산한 의류 제품을 수입하는 것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 된다. 외교가 소식통은 “재료 구매나 판매처 확보 등이 어렵기 때문에 공단 가동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해외로 유통하더라도 밀무역 시장 정도”라고 예상했다.

②외국 자본 투자 있나=북한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RFA 보도 직후 “개성공업지구는 명백히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으로,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 괴뢰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재가동을 시인했지만, 외국 자본의 투자나 외국 기업으로부터의 발주 여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9일 공단 재가동을 위한 전기 공급처와 관련 “개성공단을 중단하며 한전에서 공급하던 전기도 차단했다. 만약 가동했다면 자체적으로 끌어다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자본이 외국으로부터 유입됐다면 해당 국가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다. 결의 2375호는 북한으로의 투자 및 북한과의 합작 사업을 전면 금지했다. 앞서 채택된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모든 회원국이 자국 내에 있는 북한 은행 지점을, 결의 2321호는 북한 내에 있는 모든 회원국의 은행계좌를 폐쇄하도록 했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개성공단을 재가동한 것이라면 남·북 간 합의 위반이다. 2006년 체결된 ‘남·북 투자 보장에 대한 합의서’는 “상대방의 투자 자산을 국유화 또는 수용하거나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③침묵하는 문재인 정부의 고민=정부는 아직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따져봐야 하는 문제”라고만 말했다. 개성공단 재개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위시 리스트’ 상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대북제재 국면이 변화하면 개성공단 우선 재개를 추진하겠다”(8월)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은 이런 정부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간 개성공단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쓰일 수 있는 대량 현금, 즉 안보리가 금지한 이른바 벌크 캐시(bulk cash) 유입 통로라는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이를 판단하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실제 개성공단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무단 가동은 제재위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제재위는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경우 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 제재위가 결의 위반이라는 확정적 판단을 내릴 경우 개성공단 재가동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으로서는 나중에 대타협을 통해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일단은 중국에서 쫓겨난 노동자 재수용과 외화벌이 등을 위해 지금은 개성공단을 돌리자는 판단을 한 것이고, 냉정하게 보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개성공단은 북한의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 재개를 원하지만 당장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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