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으로 돈 뺏기고 통장까지 내줘…‘이중 피해’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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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스피싱.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중앙포토]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선이자,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그런데 보이스피싱으로 돈만 뜯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통장까지 내줘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전락하는 ‘이중 피해자’가 늘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은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이러한 악질적인 보이스피싱 사기가 늘고 있다며 소비자들에 주의를 당부했다. 사기범들이 대포통장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돈과 통장을 모두 가로채는 수법을 쓰고 있어서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대포통장 명의자’의 이중 피해 사례는 2015년 한 해 동안 1130명, 59억600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747명, 46억2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자(1만3433명) 중 5.6%가 이중 피해를 당했다. 특히 40, 50대 중장년층 피해자 수는 상반기 452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4050 세대는 자녀 교육비와 사업자금 등 대출수요가 많은 데다, 일단 피해금 송금 뒤엔 사기범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절박함으로 인해 사기범의 주요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러한 ‘이중 피해’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금융회사를 사칭해서 대출을 해주겠다며 접근한 뒤 돈과 체크카드를 모두 가로채는 방식이다.

A 씨는 ○○저축은행을 사칭한 전화를 받고 대출을 해준다는 말에 속아 선이자 명목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총 489만원을 입금했다. 사기범은 “대출을 위해 필요한 신용등급이 부족하다. 입출금 거래를 생성시켜서 신용등급을 올린 뒤 대출을 해주겠다”면서 A 씨에게 체크카드를 추가로 요구했다. A씨가 체크카드를 내주자 사기범은 또 다른 피해자 B에게 대출 빙자 보이스피싱을 한 뒤, A의 계좌를 B의 피해금을 인출하는 대포통장으로 썼다. B씨가 피해 구제를 신청하면서 A의 계좌는 지급정지됐고 A 씨는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등재됐다.

지난달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적발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사기행각으로 챙긴 돈뭉치를 들고 기뻐하면서 찍은 사진. 이들은 자랑삼아 자신들의 휴대전화기에 사진을 저장해놨다.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달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적발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사기행각으로 챙긴 돈뭉치를 들고 기뻐하면서 찍은 사진. 이들은 자랑삼아 자신들의 휴대전화기에 사진을 저장해놨다.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검찰 등 수사기관을 사칭하기도 한다.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다”고 속여서 수사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이후 피해자에게 “해당 계좌의 소멸여부 확인을 위해 돈을 보낼테니, 그 돈을 다시 금감원 직원 계좌로 이체하라”고 유도해서 피해자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이용한다.

대포통장을 먼저 이용한 뒤 돈까지 뜯어내는 수법도 있다. 사기범은 “◇◇주류회사다. 회사 매출을 줄여 세금을 절감하기 위해 통장을 구하고 있다. 통장을 양도하면 월 최대 600만원을 주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C씨의 통장을 확보했다. C씨의 통장은 대포통장으로 이용됐고,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서 C씨 계좌로 피해금을 입금했던 D씨가 C의 계좌에 지급정지를 요청했다. 그러자 사기범은 C씨에게 “지급정지를 해제시켜주겠다”며 또다시 접근했고 C는 돈을 송금해서 보이스피싱 피해까지 입었다.

대포통장 명의인으로 낙인 찍히면 ‘금융질서문란행위자’로 등록돼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겪게 된다. 1년간은 신규 계좌 개설이 되지 않고 전체 계좌의 전자금융거래도 막힌다.

금융감독원은 특히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이 최근 빈번한 만큼, 대출 권유 전화를 받으면 일단 전화를 끊은 뒤 금융소비자정보포털 ‘파인’ 등을 통해 제도권 금융회사인지를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또 해당 금융회사의 공식 전화번호로 전화한 뒤 통화한 직원이 실제로 재직하는지를 문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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