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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한가위 야구의 추억 BEST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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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한가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포스트시즌에 나설 1~4위 팀들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정규시즌 마지막날인 3일에도 KIA와 두산, 롯데와 NC가 각각 한국시리즈와 준플레이프 직행 티켓을 놓고 다툰다. 5일부터는 가을 야구가 시작된다. 과거에도 추석 연휴에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정규시즌 막바지 치열한 순위다툼, 또는 포스트시즌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기들도 많다. 지난 35년간 펼쳐졌던 추석 연휴 명승부 BEST3를 꼽아봤다.

9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OB선수들이 박철순 투수를 무등태우고 있다.

9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OB선수들이 박철순 투수를 무등태우고 있다.

1. 1995년 정규시즌 OB 베어스 VS 해태 타이거즈

1995시즌은 20세기 이전 최고의 시즌이었다.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이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인 가운데 인기구단 롯데와 해태가 3위 자리를 다퉜기 때문이다. 2009년(592만5285명) 이전까지 유일하게 500만 관중(540만6374명)을 넘어선 게 이 해였다.

추석 연휴(9월 8~10일)를 앞두고 광주에서는 혈전이 예고됐다. 더블헤더를 포함해 OB와 해태가 4연전을 치른 것이다. OB는 해태와 대결을 앞두고 열흘 동안 7승1패를 거두며 LG를 1경기 차까지 추격했다. 반면 해태는 다급했다. 당시 규정에는 3위와 4위의 승차가 3.5경기 이내일 경우에만 준플레이오프가 열리게 돼 있었다. OB전을 앞둔 상황에서 3위 롯데와 4위 해태의 승차는 5.5경기. 해태로선 OB를 잡아야만 포스트시즌에 나설 수 있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해태 팬들은 광주 무등구장을 찾았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해태는 4연전을 모두 내줬다. 연휴 마지막 날 경기에선 홈런 4방을 터트렸지만 9-10으로 역전패했다. 해태의 포스트시즌행이 사실상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반면 OB는 LG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서며 여유있게 귀경했다. OB는 0.5경기 차로 LG를 제치고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1995시즌 전 OB를 우승후보로 꼽은 이는 많지 않았다. 전해 7위에 머물렀고, 윤동균 감독과 선수단의 갈등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이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했고, 심정수·김민호·진필중·장원진 등 신예 선수들이 도약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OB는 롯데를 4승3패로 물리치고 1982년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원년 우승의 주역 박철순이 펼친 투혼은 지금도 베어스 팬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다.

99프로야구LG:한화정민철(한화,55)

99프로야구LG:한화정민철(한화,55)

2. 1999년 정규시즌 한화 이글스 VS 현대 유니콘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99 시즌을 앞두고 대수술을 감행한다. 미국과 일본처럼 양대리그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98시즌 1·4·5·8위인 현대, OB, 해태, 롯데가 드림리그, 2·3·6·7위팀 LG, 삼성, 쌍방울, 한화가 매직리그에 편성됐다. 포스트시즌은 각 리그 1위팀이 상대리그 2위팀과 7전4승제의 플레이오프를 벌인 뒤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7전4승제)를 치르기로 했다. 단, 리그 3위가 반대편 리그 2위보다 승률이 높을 경우엔 두 팀간의 준플레이오프(3전2승제)를 치르기로 했다.

KBO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리그를 잠시 중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예선을 겸한 아시아선수권이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리그 재개를 앞둔 당시엔 준플레이오프가 열릴 가능성이 있었다. 드림리그 3위 현대(62승5무53패)가 매직리그 2위 한화(62승2무56패)에 1.5경기 앞섰기 때문이다. 두 팀은 인천에서 운명을 건 3연전을 치른다.

추석 당일인 24일 현대와 한화는 나란히 에이스를 투입한다. 현대는 19승으로 다승 1위를 달리던 정민태를, 한화는 15승을 거둔 정민철을 선발로 내세웠다. 5회까지는 '0'의 균형이 이어졌다. 하지만 6회 초 이영우의 솔로홈런이 터지면서 앞서나간 한화는 7회 백재호의 투런포, 8회 최익성의 솔로포까지 묶어 4-0 승리를 거둔다. 정민철은 9이닝 4피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기세를 탄 한화는 3연전을 싹쓸이하고 내친 김에 10연승을 달렸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없이 플레이오프에 나선 한화는 드림리그 1위 두산을 상대로 4연승을 거둔 뒤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마저 4승1패로 물리친다. 한화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2009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뒤 한복을 입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산=연합뉴스]

2009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끝난 뒤 한복을 입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부산=연합뉴스]

3. 2009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롯데 자이언츠 VS 두산 베어스

2008년 롯데에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No Fear(두려워하지 말라)'를 강조하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7년간 비밀번호(8-8-8-8-5-7-7)를 찍었던 롯데는 3위에 오르며 8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다. 달라진 롯데는 이듬해에도 4위에 오르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3위 두산. 출발은 좋았다. 롯데는 1차전에서 다승왕 조정훈의 역투를 앞세워 7-2로 승리한다. 그러나 롯데는 2, 3차전을 연달아 내주면서 벼랑 끝에 몰린다.

4차전을 앞둔 로이스터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한 가지 공약을 발표한다. 바로 이틀 전 박진웅 사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한복을 경기 뒤 입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롯데가 4차전에서 진다면 시즌이 끝날 수도 있었다. 로이스터 감독에겐 '져도 한복을 입겠단 뜻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한복을 입고 인터뷰하겠다"고 대답했다. 왜 슬픈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 것일까. 롯데는 2회 말 공격에서 이대호의 선제 솔로포로 기분좋게 출발했다. 하지만 3회 초 선발 배장호가 무너지면서 7점을 내줬다. 결국 경기는 9-5,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약속대로 한복을 입고 나온 로이스터 감독은 두산 선수단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소신대로 한 행동에 대해 '멋있다'고 평가한 이도 있었고, '경기에서 졌는데 지나쳤다'고 비판한 이도 있었다. 어찌 됐건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던 로이스터는 한국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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