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오모테나시 외교’를 배워야 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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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지난달 29일 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흠뻑 젖은 채로 도쿄 시내 한 호텔에 나타났다. 빗속에서 거리유세를 마치고 난 직후였다. 그가 향한 곳은 중국의 국경절(건국기념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 45주년 기념식장.

중의원 해산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린 선거전을 치르는 와중에도 아베는 중국 측의 참석 요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15년 만의 일본 총리 등장에 중국 측은 반색했다. 아베 총리는 행사장에서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일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국의 소극적 태도로 열리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의 등 꼬인 외교 문제들을 몸소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례적인 총리 참석에 이튿날 중국대사관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관계 개선의 생각을 중국도 느낀다”고 화답했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일본 외교의 극진함은 원래 유명하다.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즉, 마음을 다해 상대방을 모신다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정신이 외교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 지난 9월 인도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인도 전통의상을 입었다. 무릎까지 오는 쿠르타와 소매 없는 네루 재킷이었다. 주저앉아 양말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 아베의 모습은 그대로 언론에 노출됐다. 두 정상은 인도식 꽃장식을 한 지붕 없는 지프를 타고 8㎞ 이동하며 20여 개 거리 예술단의 환영공연도 지켜봤다.

두 정상 간 친밀함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었다. 2014년 모디 총리의 일본 방문 때 아베가 먼저 정성을 다했다. 아베는 이례적으로 교토(京都)에 내려가, 이틀간 영빈관 정원을 함께 거닐고 교토의 명승지를 안내하면서 모디 총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덕분인지 인도의 고속철도 도입 사업에서 일본 신칸센이 채택되었다. 또한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한 양국 협력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오모테나시 외교’는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일 때도 선보일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벌써부터 일본계 프로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의 일정을 이에 맞추고 있다. “마쓰야마 히데키는 정말 좋은 선수다. 함께 라운딩해보고 싶다”는 트럼프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마쓰야마 선수는 아베의 부름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외교는 마음을 사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때론 정성이 담긴 지도자의 작은 행동이 상대국 외교정책을 바꾸기도 한다. ‘오모테나시 외교’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