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는 '여인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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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주부 김모(37.서울 개포동)씨는 며칠 전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로부터 "'조폭'이 책 세 권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고 옆의 친구를 실로폰으로 때리는 바람에 울었다"는 말을 듣고 속이 상했다. 김씨의 아들이 말한 '조폭'은 남학생 때리기를 일삼는 드센 여학생을 일컫는 유행어. 김씨는 "주변을 보면 여학생에게 맞는 남자 아이들이 훨씬 많다"며 "적어도 아이들 사이에서 성차별이란 이제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등학생들의 양성평등 의식이 대단히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남녀 구분을 할 필요가 없으며, 아버지가 집안일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회장은 여학생이 하면 더 잘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는 등 일부 의식조사에서는 여성의 리더십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나왔다.

여성부는 지난해 12월 충남여성정책개발원에 의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37개 초등학교의 학생 19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초등학생 양성평등 의식조사'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80.6%가 아빠의 가사활동에 대해 "전혀 이상하지 않다"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엄마.아빠가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84.1%로 압도적이었다. 자녀 양육의 일차적 책임자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답이 64.1%를 차지했다.

학교생활의 경우 초등학생들은 여성의 역할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여학생이 전교회장을 하면 더 잘할 것이라는 응답(38.5%)이 남학생이 잘할 것이라는 답(23.6%)보다 많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여학생이 더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54.9%로 나온 반면 남학생의 경우 남학생이 더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37.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성차별을 받는다는 응답은 남학생들에게서 오히려 많이 나왔다. 학교에서 성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남학생(22.8%)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학생(9.2%)보다 2.5배나 높게 나온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행동.태도 규범이 성별로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어른들 못지않은 보수주의 성향을 보였다.

조사책임자인 충남여성정책개발원 황창연 교육팀장은 "초등학생의 양성평등 의식이 대체로 높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 개발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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