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효는 인성·시민교육의 시작이자 핵심 가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1호 02면

사설

일상의 메말랐던 감성이 고향의 따뜻한 인심으로 승화되는 한가위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도심 곳곳엔 어제부터 시작된 긴 연휴로 일찌감치 고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고속도로는 자동차 행렬로 붐비고 버스 터미널과 공항은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씩 안은 귀성객들로 가득하다. 전과 달리 고향 가는 손엔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차례를 지내는 곳이 관광지 콘도로 바뀌었을지언정 가족과 함께한다는 추석의 본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원래 추석은 한 해 동안 풍성한 수확을 안겨 준 땅과 조상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농경사회의 문화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추석은 그 뜻이 달라졌다. 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척박한 삶의 전선을 헤쳐 나갈 용기를 충전하고 돌아온다. 삶의 근원을 다시 확인함으로써 나를 있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자녀에게 온고지신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추석의 진정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슴 한쪽에는 늘 고향에 두고 온 애틋한 마음이 놓여 있다. 바로 부모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모는 여전히 40대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떨어져 살면서 늘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지 못한 것을 안쓰러워한다. 자기 모든 것을 내주고도 해준 게 없다며 고개를 떨군다. 이마엔 지난 세월의 거친 풍파를 견뎌낸 주름이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 깊게 파여 있다.

제아무리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자율주행차가 온 도로를 누비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부모는 나의 뿌리이며 본질이고, 자식에게 나는 뿌리를 이어주는 줄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효’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최우선의 가치 덕목이었다. 모두에겐 뿌리가 있고, 또 그 모두는 누군가의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효는 뒷전으로 밀렸다. 지식의 발달이 더뎠던 시절엔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큰 권위를 가졌다. 연륜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혜가 곧 지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하게 발전하면서 지식의 반감기는 빨라졌고 과거 어른이 갖고 있던 경험은 과거의 위상만 못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효의 가치도 희석되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효를 구태의연한 생각, 고루한 가치로 치부하기도 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인성교육진흥법 개정안에도 인성 덕목 중 하나인 효를 삭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민주시민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의 교육이념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정말 효는 현대 사회에 큰 의미가 없는 화석화된 가치일 뿐인가.

인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사회는 가족이다. 공동체의 첫 번째 구성원은 바로 부모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올바른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덕목과 가치를 배운다. 즉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서 상대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마음씨를 배우고, 형제·자매와 사이좋게 지내는 과정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협업의 가치를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효다. 즉 효는 시민교육의 출발인 셈이다.

특히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서 효는 단순히 자식이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노인이 된 자녀를 부모가 정당한 예우를 갖춰 대하고 상생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도 현대적인 효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성교육진흥법에서 효를 과거의 화석으로 여겨 빼버릴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맞게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인성교육 역시 지난 시대의 구태의연한 주입식 윤리 교육처럼 보여선 안 된다. 내면의 바른 품성을 길러주는 도덕성 교육,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 키우는 사회성 교육, 타인과 공감하고 자신의 정서를 건강하게 꾸려갈 수 있는 감성 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전제가 바탕이 돼야만 시민교육도 인성교육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지만 또 누군가의 부모다. 자신의 부모마저 정성껏 모실 수 없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효는 인성교육은 물론 시민교육의 가장 핵심적 가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