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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여혐·실종·음모 … 1억 명 홀린 추리물, 저자 환생한 듯 이야기는 계속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Deep inside│밀레니엄 시리즈 

밀레니엄 시리즈 표지

밀레니엄 시리즈 표지

밀레니엄 1~3권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밀레니엄 4권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문학동네

1~3권 내고 심장마비로 숨진 작가 #소녀 실종 파헤치는 기자와 해커 #은폐된 악의 세계 추적 실감 묘사 #스웨덴서 영화 3편, 할리우드 가세 #파시즘·젠더폭력·국가폭력 건드려 #노벨상 작가 요가 “불멸의 문학” #기자 출신 작가가 이어 쓴 4권 #유족·출판사가 후계작가 공식 지정 #주인공을 원작자 분신으로 그려내

스웨덴의 작은 섬, 열여섯 살 소녀가 실종된다. 이름은 하리에트 방예르. 1년 후, 그녀의 삼촌 헨리크 방예르에게 압화 한 송이가 배달된다.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일까. 하리에트가 여덟살 때, 그녀는 삼촌의 생일 선물로 압화를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이 특별한 선물은 이후로도 그의 생일마다 배달된다. 4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결국, 헨리크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라는 이름의 기자 한 명을 고용한다. ‘밀레니엄’이라는 사회고발 잡지의 발행인이자 한번 사건을 물면 놓지 않는 워커홀릭 기자다. 헨리크는 “내 어린 조카딸을 죽인 그 쓰레기를 찾고” 싶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내 가족들을 살펴보라고. 왜냐하면 스웨덴 산업의 기둥이자 부유함의 상징인 방예르 기업 사람들은 사실 “도둑놈, 수전노, 깡패 혹은 무능력자에 불과”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 최악의 적이 누군지 아나? 그것은 다른 회사들, 내 경쟁자들이 아니었네. 바로 내 가족들이 최악의 원수였지.”

소설 『밀레니엄』 이야기다. 2005년 스웨덴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1~3권은 지금까지 52개국에서 90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스웨덴에서 세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할리우드에서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루니 마라(리스베트 역)와 대니얼 크레이그(미카엘 역) 주연으로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을 영화화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이 ‘밀레니엄 신드롬’을 보지 못했다. 3권까지 집필을 마친 그는 출간 3개월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밀레니엄』 1~3권을 쓴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1~3권을 쓴 스티그 라르손.

총 10부작에 달하는 『밀레니엄』 시리즈를 기획하고 집필한 라르손(1954~2004)은 스웨덴의 사회고발 전문 기자였다. 1983년부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인종차별, 극우파, 파시즘, 젠더 폭력과 여성혐오 및 사회의 온갖 문제를 날 세워 비판했다. 1995년 동료들과 사회고발 잡지 ‘엑스포’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일했다. 사회 비판의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살해 협박에 시달려 식당에서는 출구가 보이는 자리에만 앉아야 했고, 수 없이 이사다녔다.

그럴 만도 했다. 1986년, 스웨덴 사민당의 상징이었던 총리 울로프 팔매는 산책을 하다 총에 맞아 죽었으니까. 스웨덴에서는 지적장애, 신체장애를 가진 이들이 강제불임 시술을 당한 적이 있고, 인종차별도 만연했다. 이것이 기자 라르손이 목도한 평화로운 복지국가 스웨덴의 실상이었다. 그는 계속 싸우는 데 자기 자신을 걸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파괴하는 것에 맞서 싸우는 건, 그의 분신 미카엘의 대사를 빌리자면 “윤리” 였으니까. 『밀레니엄』은 라르손의 이 신념을 담고 있다.

스티그 라르손에 이어 『밀레니엄』 시리즈의 4권을 집필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사진 문학동네]

스티그 라르손에 이어 『밀레니엄』 시리즈의 4권을 집필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사진 문학동네]

언뜻 보면 하리에르 실종사건은 스릴러 소설의 흔한 설정처럼 보인다. 사랑스러운 금발머리 소녀, 심지어 밀실 미스터리라니. 곰팡내나는 듯한 이 소설이 어떻게 밀리언셀러가 됐으며,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바르가스 요가로부터 “불멸의 문학”이라는 찬사를 들을 수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사실 내가 그랬다. 왜냐하면 이 뻔해 보이는 설정에, 소설의 진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이 100쪽 이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문장은 거칠었고 대화는 설명적이었으며,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많았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미카엘과 함께 실종 사건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여성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캐릭터다. 라르손은 이 캐릭터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공들여 설명했다.

스모키 화장과 피어싱,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고독한 성격. 그리고 천재. 그녀는 유능하다. 놀라운 기억력, 흔적도 남기지 않는 해킹 실력, 뛰어난 직관과 판단력. 나는 순식간에 리스베트에게 매료됐다. 나는 그녀를 더 보고 싶었다. 그녀가 미카엘과 함께 하리에트의 비밀을 찾아내는 장면을 읽고 싶었고, 살인범을 응징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읽게 된다. 한 소녀의 실종이 끔찍한 현실로 연결되는 놀라운 결말을. 그리고 또 읽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대사. “기억해둬.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이 대사는 강간 피해자 여성이 전기 충격기로 가해자를 기절시킨 후 나온 말이다. 물론, 전기충격기는 시작에 불과했다.

강화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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