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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만난 성소수자 ②

중앙일보

입력

by 안호경⋅연제은⋅오수연

8월 5일, TONG청소년기자들이 두 번째 고등학생 성소수자를 만났다. 범성애자 김민주(가명) 학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지 일주일만이었다.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레즈비언 강수진(가명)학생이다. 그는 스스로를 시스젠더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했다. 시스젠더란 사회가 지정한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레즈비언은 여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여성 동성애자를 뜻한다. 그는 정체성을 자각한 지 6년 정도 됐으며 현재 연애 중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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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자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랄 것은 없어요. 그냥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성소수자로서 학교 안에서 가장 불편하거나 불쾌한 점은 무엇인가요.
“제일 불편한 점은 모두가 나를 당연히 시스젠더 헤테로(이성애자)로 여긴다는 거. 너무 자연스럽게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보는 거랑 우리(여학생들)가 결혼해서 남편을 둘 거라 전제하고 얘기하는 게 제일 불편해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도 걸려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사람들은 불평등해도 된다는 말인가 싶어서요. 저를 포함해서,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을 지우는 단어가 우리 주변에 너무 많아요. 또 커밍아웃을 하면 바뀌는 싸한 분위기도 불쾌하죠. 불쾌하지만 괜찮다고도 볼 수 있는 점도 있어요. 연인이랑 있어도 들키지 않는다는 점이죠. 아무도 정말로 사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가끔 둘이 사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모르는 척하고 부정해요. 그럼 그냥 넘어가죠. 편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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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학생의 일화를 그린 일러스트. 강수진 학생은 “아웃팅(성소수자의 성 지향성이나 정체성을 본인의 허락 없이 밝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귀냐는 물음에 퀴어포빅(성소수자 혐오)한 반응을 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애인 외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과 교류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저는 커밍아웃을 쉽게 하는 편이라 성소수자 친구들도 꽤 많이 만났습니다. 물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도 많지만 학교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도 많아요. 다들 다양한 사람들이죠. 시스젠더 헤테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요. 만나면 남자 이야기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 제일 좋고, 여자친구랑 있어도 부정당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아요. 커뮤니티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을 때 주로 했는데, 아무래도 인터넷 커뮤니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데가 많아서 인간관계도 한정적인 편이죠. 그래도 거기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죠. 그냥 친구들이에요. 딱히 뭐라 설명할 게 없을 만큼(웃음) 평범한 친구들이요. 전에는 친구들과 연예인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요즘은 음… 그냥 일상 얘기하고 그럽니다.”

-커밍아웃에 대한 경험도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아! 이거 정말 많아요. 전 무게 잡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술술 넘어가듯이 하는 편이에요. 옛날엔 무게도 좀 잡았었는데, 무게 잡고 했을 때 정말 괴로웠어요. 내가 진지한 태도를 보이면 상대는 ‘어떡해’라는 반응을 하더라고요. 아니, 내가 레즈비언이라는데 뭘 어떡해요(웃음)? 그런 반응이 걱정해 주는 건 줄 알고 전 고맙다고 말했죠. 그런데 나중에 대화를 하니 그 친구가 ‘너 아직도 여자 좋아하고 그러니?’ 이러더라고요. 아 정말(한숨). 그 이후로 한동안 커밍아웃 안 했어요.

그 다음엔 반 친구들한테 커밍아웃한 적이 있어요. 그땐 그냥 ‘나 여자 좋아해’라고 담담하게 말했죠. 친구들은 ‘아 그래?’ 이러고 넘어갔어요. 그래서 이번엔 좀 괜찮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수업 시간에 동성애 이야기만 나오면 절 돌아보고, 동성 연애를 그린 팬픽(fan fic, 유명인의 팬이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만든 2차 창작물. 주로 소설을 말한다.) 같은 거 보고 와서 저한테 얘기하고 그러더군요. ‘레즈 친구 처음 사귀어 봐’, ’완전 신기해’, ’나 게이 친구 사귀는 게 꿈이었어’ 등의 반응도 나오고요. 그래서 불쾌했어요.

하나 더 있어요. 아 혹시 너무 많은가요(웃음)? 이걸 마지막으로 할게요. 이건 성공 사례예요. 그냥 지나가듯이 커밍아웃했는데 ‘아 그래?’ 이러고 밥 먹으러 갔거든요. 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고 딱히 달라진 점도 없고요. 그렇게 끝이었어요. 그게 가장 좋았습니다.”

-이 기사를 꼭 읽었으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 여자친구요(웃음). 인터뷰 전에 여자친구와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또 인터뷰에서 어떤 말을 할지 여자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학교 선생님들이 참 많이 거론됐어요. 제가 누군지 밝히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 기사를 저희 학교 선생님들이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를 모르는 대한민국의 다른 학교 선생님들도 이 기사를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누군지 모르니까, ‘혹시 내가 가르치는 반 친구인가?’ 싶게 말이죠. 각 반에 성소수자가 있을 확률은 제 경험상 매우 높습니다.”

-이 기사를 읽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작물의 소재도 아니고 소설 속 캐릭터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에요. 특별한 취급 말고 같은 인간으로 봐주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선생님, 저 레즈비언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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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학생이 인터뷰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어한 한 마디다. 인터뷰를 진행한 오수연 기자가 직접 쓰고 팻말처럼 들어 촬영했다.

“저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만난 김민주(가명) 학생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수진 학생은 여자친구에게 자주 결혼하자는 말을 하지만, 자신들이 졸업 후 성인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슬퍼진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이성애자에게 허락한 권리를 성소수자에게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는 분명 존재하는데 사회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강수진 학생은 말했다.

한국의 고등학생 성소수자 연재 기사가 이들의 존재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준 강수진 학생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른 고등학생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다음 3편(10월 게재 예정)을 마지막으로 종결됩니다.

글=안호경⋅연제은⋅오수연, 사진·일러스트=연제은(일산 대진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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