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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박희순 "나만의 따뜻함으로 승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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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따뜻함으로 승부한다 #'남한산성' 박희순 인터뷰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박희순 / 사진=전소윤(STUDIO 706)

청에게 손을 내밀 것이냐,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대신들의 격론. 이 뜨거운 말[言]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장수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이시백(1581~1660)이다. 인조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를 따라 오로지 충성을 바칠 마음으로 오늘도 남한산성의 성벽 위에서 한겨울 칼바람을 맞고 서 있는 조선의 장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본분을 지키는 자의 아름다운 기백을 박희순(47)이 이번에도 뜨거운 눈빛으로 연기한다.



━병자호란 당시 이시백은 55세였다. 혹독한 추위 속에 전투에 임하는 55세 조선 장수의 기분이란 어떤 걸까.
“‘어우, 힘들어’ 아니었을까(웃음). 이번에 이시백의 갑옷과 투구를 철저히 고증해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전부 20㎏쯤 됐다. 너무 무거워 입고 그냥 서 있기도 힘들다. 그런 채로 전투 장면을 찍으려니 살이 쪽쪽 빠졌다.
이 영화의 전투 장면은 어떤 볼거리가 아니라, 처절함 그 자체다. 백성 중에 차출한 오합지졸 군사들을 이끌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청군과 싸우는 거니까.”

━조선의 운명과 백성의 목숨을 걸고, 최명길이 화친을, 김상헌이 척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이시백은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그만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화친이든 척화든 결국 왕과 백성을 지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시백에게는 방법이 무엇이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엇갈리는 의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한 거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양쪽으로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시백처럼 자신의 본분과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그 조직이 튼튼해지는 거라 생각한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화친이냐, 척화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당시 조선의 딜레마를 개인적으로도 고민해 봤을 것 같은데.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 쪽이다. 당시 세계정세를 봤을 때 청이 흥하고 있는 상황인데, 청에 맞서 백성과 함께 개죽음을 맞기보다는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조 앞에서 날카롭게 맞서는 최명길과 김상헌도 서로의 충정을 높이 산다. 그런 두 인물에게 이시백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이시백을 존중하는 건, 그가 누구보다 나라를 위하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의견이 다른 인물들끼리도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참 멋스럽다. 지금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조선 시대 선비들의 멋이랄까.”

'남한산성'

'남한산성'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청군이 코앞까지 쳐들어온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라의 운명을 고민하는 대신들의 충정이 지금 관객에게는 퍽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의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대신들이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싸우는 모습이, 한심하게 말의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말에는 진심으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지금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가 싸우는 것도 어찌 보면 탁상공론 같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름의 논리와 충정이 담겨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원작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인물들의 충심을 더 진하게 그리고 있다고 느꼈다. 그게 배우들의 절절한 연기를 통해 훨씬 피부에 와닿게 살아난 느낌이다.”

━의견이 분분한 문제를 두고, 사람 박희순은 보통 어떤 결정을 내리나.
“중도를 지킨다(웃음). 가만 보면, 결국은 목적은 같은데 그 방법을 두고 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들어 주면서 중심을 지키려 하는 편이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밀정’(2016, 김지운 감독)의 독립투사 김장옥, ‘브이아이피’(8월 23일 개봉, 박훈정 감독)의 북한 보안성 출신 요원 리대범에 이어 이 영화의 이시백까지,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 작품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뚜렷이 새기는 연기를 보여 주고 있다. 모두 비장미 넘치지만 특유의 인간미가 엿보이는 인물들이다.
“‘밀정’ 이후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 내가 이병헌 씨와 김윤석 형의 중간인 것 같다. 무슨 얘기냐 하면, 배우로서 내 개성이, 이병헌의 부드러움과 윤석 형의 불같은 카리스마의 중간쯤 자리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이쪽에도 저쪽에도 못 끼는 느낌이랄까(웃음).
스스로도 그 중간이 나한테 잘 맞는다고 느낀다.사실 난 남성미가 넘치는 성격도 아니고,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외모나 목소리가 묵직한 편이다 보니, 센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그런 인물을 해석할 때 내가 지닌 따뜻함이 나도 모르게 가미되는 것 같다. 또 그게 다른 훌륭한 배우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나만의 전략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 영화에서 그러한 연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면.
“대신들의 논쟁에 휘말려 이시백과 그 부관이 전장에서 잘못한 것처럼 몰리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이시백이 부관의 벌을 대신 지겠다고 하는데, 그 말이 먹히지 않아 처형당하는 부관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장면을 연기할 때의 느낌이 각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사극영화인 동시에, 또 한 편의 남자영화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언쟁이 극을 끌어가는데, 그게 반복되는 구조에서 극의 긴장이 효과적으로 고조될까 걱정이 없지 않았다. 영화를 보니, 완전 기우였다. 그 말과 말이 주옥같고, 두 인물의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 남자들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아름다운 시 같은 문장과 철학으로 겨루는 영화, 멋진 정통 사극은 오랜만 아닌가.”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사진=전소윤(STUDIO 706)

10월 3일 개봉하는 ‘남한산성’의 주연 배우 이병헌·박해일·고수·박희순. 사진=전소윤(STUDIO 706)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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