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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때 200만 명에 인술 펼친 '서전 병원' 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준비한 병상은 200개였는데 점점 환자가 늘었어요. 1주일 만에 700명이 병원에 들어왔죠”
1951년 부산에 있던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애니 페테르손은 지난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백발노인이 된 그가 6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낸 건 지금 스웨덴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때 스웨덴이 펼친 의료지원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이 그것이다.

중립국 스웨덴, 발발 직후 의료지원단 파견 # 1950~1957년 부산상고에서 야전병원 운영 # 당시 의료진·환자 찾아 다큐멘터리 제작 중 #"어렵게 찾은 생존자 대부분 고령에 병환 # 좋은 변화 원했던 그들 마음 전하고싶어" # 내년 한국서 방영, 부산영화제 출품 계획

한국전 당시 인도적 목적으로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5개국(스웨덴·인도·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 중 스웨덴은 가장 먼저 인력을 보냈다.
1950년 9월 23일 부산상업고등학교에 병실·진찰실·수술실을 갖춘 병원을 차려 1957년까지 의사·간호사·위생병·운전사 등 연인원 약 1200명을 파견했다. 정전 뒤엔 민간인 치료에 전념해 총 200만 명 넘는 환자를 돌봤다.

58년엔 덴마크·노르웨이와 함께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설립해 한국 현대 의료 체계의 기틀을 다졌다. 10년 뒤 국립의료원 운영을 한국 정부에 넘길 때까지 스웨덴은 폐허가 된 한국을 도왔다. 그럼에도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이 운영한 야전병원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스웨덴 국군영화재단의 라르스 프리스크 이사장(왼쪽), 코디네이터 체스턴 프리스크(가운데), 피터 노드스트롬 감독. 사진=홍주희 기자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이 운영한 야전병원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스웨덴 국군영화재단의 라르스 프리스크 이사장(왼쪽), 코디네이터 체스턴 프리스크(가운데), 피터 노드스트롬 감독. 사진=홍주희 기자

그래서 스웨덴 국군영화재단이 팔을 걷어붙였다. 산하 제작사인 ‘아카(AKA) 필름’을 통해 다큐멘터리 ‘잊지 말자(Let us not forget·가제) 제작에 나선 것. 스웨덴에서 의사·간호사 등 참전자 20여 명 인터뷰를 마친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의 후반 촬영을 남겨두고 있다.
최근 방한한 스웨덴 국군영화재단의 라르스 프리스크 이사장과 피터 노드스트롬 감독, 제작 코디네이터를 맡은 체스틴 프리스크를 18일 만났다. 이들은 지난주 부산에서 개막한 ‘서전병원 사진전’에도 참석했다. 서전(瑞典)은 스웨덴의 한자식 표기다.

1950년 부산상고 교사에 차린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스웨덴대사관]

1950년 부산상고 교사에 차린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스웨덴대사관]

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 [스웨덴대사관]

전쟁 당시 부산의 모습. [스웨덴대사관]

-어떻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게 됐나
프리스크(프)=중립국 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부 소속으로 2004~2006년 한국에 체류할 때 야전병원에 대해 알게 됐다. 그때 다큐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관련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문서나 사진은 대사관을 통해 구했다. 당시 참전했던 사람들을 찾는게 쉽지 않아서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니헤테’에 구인광고 하듯이 광고를 게재했기도 했다.
-그래서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었나
노드스트롬(노)=58명과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거의 90세를 넘긴 노인이고 치매 등을 앓는 경우도 많아서 모두와 인터뷰할 수는 없었다. 약 20명이 다큐를 위해 인터뷰해줬다.
-그들이 들려준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1953년 근무했던 앨리스 올센 간호사가 전해준 ‘사보’라고 불렀던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군용차에 치어 병원에 온 사보는 다리를 절단했는데, 당시엔 의족을 제작하는 곳이 없었다. 마침 올센 간호사의 아버지가 의사이면서 목수였고, 직접 나무로 의족을 만들어줬다. 올센 간호사는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지팡이를 짚고 의족으로 달리는 사보를 보는 기쁨을 형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주 부산에서 열린 사진전에 ‘사보’가 왔었다. 한국 이름은 박만수라고 하더라. 사고 이후 병원에 실려온 과정과 자신을 수술한 집도의 의사가 라르스 미렌이라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집도 일지를 찾아서 다큐에 다뤄질 수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야전병원에서 수술 중인 의료진들. [스웨덴대사관]

야전병원에서 수술 중인 의료진들. [스웨덴대사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어린이들과 함께한 야전병원 스태프. [스웨덴대사관]

병원에서 치료 중인 어린이들과 함께한 야전병원 스태프. [스웨덴대사관]

정전 뒤 야전병원은 1957년까지 민간인 치료에 전념했다. [스웨덴대사관]

정전 뒤 야전병원은 1957년까지 민간인 치료에 전념했다. [스웨덴대사관]

-부산에서 또 만난 사람들이 있나.
체스틴 프리스크= X-레이 촬영을 돕던 사람도 찾아왔다. 야전병원에서 일한 경력으로 30년 간 병원에서 촬영기사로 일했다고 했다. 골수염에 걸려서 다리를 절단할 뻔 했지만, 스웨덴 의료진 덕에 다리를 지킬 수 있었다며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다큐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전쟁이 아닌, 휴머니즘에 관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는 전쟁 발발 직후인 7월 자원자를 모집해 9월에 파병했다. 20대 청년들이 아무 인연 없는 한국 땅에 가기로 짧은 시간 안에 마음 먹었던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모험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도 있고,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싶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와 인터뷰한 많은 베테랑들은 뭔가 좋은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한국전 의료지원은 스웨덴이 펼친 최대의 인도적 노력이다.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제작진은 오는 10월 촬영팀을 한 번 더 부산에 보낼 계획이다. ‘서전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제작비 충당을 위해 한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받는 것도 계획 중이다.
프리스트 이사장과 노드스트롬 감독은 “내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한국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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