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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쏠림과 분산 투자의 갈림길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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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금융 자산의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분산 투자라는 단어다. 문제는 분산 투자가 좀 싱겁기도 하고 재미없다는 점이다. 분산 투자 대신 한 곳에 몰아서 투자하고 시시각각 결과를 지켜보면 손에 땀도 나고 가끔 부자가 된 느낌이 든다. 마치 제한 속도와 교통 법규를 어기며 난폭 운전을 하면 잠시 짜릿해지는 심정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산 투자가 불변의 원칙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쏠림 투자로 인한 피해는 마치 한 번의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분산은 싱겁다고 쏠림 투자 많이 해 #짜릿한 난폭 운전 뒤 사고 나는 꼴 #17세기 튤립 투기 가장 극적인 사례 #장기 분산투자에 세제 유인책 필요

역사에 등장하는 쏠림 투자의 피해 중에 가장 유명한 사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다. 당시 유럽에서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무역 항로를 개척하여 갑자기 부유해진 네덜란드 사람들은 전통적인 청교도 정신에서 벗어나 축적된 부를 과시하는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경작하기 시작한 튤립 꽃봉오리가 예쁘다 보니 여기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투자가 투기로 변질됐다. 나중에는 꽃봉오리도 안 피고 잎도 나지 않은 튤립 뿌리에까지 투자하여 한 뿌리 가격이 노동자의 5년 임금에 맞먹을 지경까지 올랐다. 광풍 같은 투기의 결과는 불문가지 다.

현대인은 금융 자산을 튤립이 아니라 주식·채권·펀드에 투자한다. 물론 여기서도 쏠림 현상은 발생한다. 어떤 기업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고 나면 그 기업이 예뻐 보이고, 그 감정이 지나치면 사랑을 거쳐서 맹신으로 치닫게 된다. 급기야 가지고 있는 금융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다른 형태의 쏠림도 있는데 좀 더 악성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고 한번도 분석해 보지 않은 국가의 채권에 너도나도 투자하고, 알파벳 이름도 복잡한 주가지수를 재료로 만든 상품에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투자한다. 사실 이런 개도국 국채나, 주가지수를 활용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는 나름대로 좋은 투자 대상이다.

문제는 쏠림 투자로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다. 실제로 특정 주가지수에 편중되어 만들어진 ELS 투자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 수익률이 하락하는 경우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모르는 곳에 쏠림 투자했다면 그렇게 하도록 권유한 금융회사가 중간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쏠림을 피하고 분산 투자를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는 투자자 개인의 현명한 판단이다. 분산 투자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러 자산 또는 여러 지역에 투자하는 고전적인 방법에서부터 비슷한 투자 대상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설계된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방법까지 있다. 시간 흐름에 따른 분산 투자, 즉 적립식 투자도 좋은 방안이다. 그런가 하면 투자는 아니지만 노후에 투자 수익과 원금을 분산해서 수령하는 인컴(소득) 배분형 금융상품도 꼭 고려해야 된다.

둘째는 금융 회사의 몫이다. 판매 회사는 투자자에게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는 불완전 판매를 근절해야 한다. 아울러 자산운용사는 펀드 한 개에만 투자해도 저절로 분산 투자의 효과를 가져오는 금융 상품을 좀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

셋째, 정책 당국이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 경제가 성장할 기반이 금융 자산의 운용 결과에 달렸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청년층과 장년층의 구분 없이 자발적으로 장기 투자를 늘리고 가급적 분산 투자를 하게끔 유인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세제 개편을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한국 금융 산업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금융 자산의 안정적인 수익률이다. 한국보다 복지 체계가 좋은 경제 대국 일본에서도 노인 빈곤은 골치 아픈 사회 문제였다. 경제 성장의 디딤돌을 갉아 먹는 요인이기도 했다. 이미 고령화된 한국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국민이 수십 년 동안 모아놓은 금융 자산을 남다른 각오로 잘 운용해야 된다. 금융 자산을 잘 운용하는 방편은 쏠림에서 벗어나 분산 투자하는 길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현명한 선택, 금융 상품 판매 회사와 자산운용사의 윤리의식과 의무감, 그리고 정책 당국의 멀리 보는 안목이 모두 필요하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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