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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원군에 4조원 추가 베팅…'다시 안 올 기회' 쥔 원동력 돼

중앙일보

입력

도시바와 합작 회사임을 앞세운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 그리고 통 크게 30조원을 베팅한 대만의 훙하이를 한·미·일 연합은 어떻게 물리친 것일까.

연간 10조원어치 구매하는 최대 고객 애플 #한미일 연합에 가세하면 분위기 크게 반전 #홍하이는 "중화권에 줘선 안된다" 여론에 발목 #인수 효과는 기술력 얼마나 공유하느냐 달려

업계에서는 두 가지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한다. 하나는 애플의 구매력, 이른바 '바잉 파워(Buying power)'다. 애플은 지난달 말 3000억엔(약 3조1500억원)을 내기로 하고 한·미·일 연합에 가세했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용 메모리를 도시바로부터 연 10조 원어치씩 수입하는 최대 고객이다. 시장에서는 당장 "가뜩이나 공급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낸드플래시 시장이 균형을 잃을까 봐 큰 손 애플이 (빅2의 등장을) 견제하고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낸드 2위인 도시바와 3위인 WD의 시장 점유율을 합치면 32%로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업체가 된다.
정보기술(IT)분야 분쟁을 주로 다루는 법무법인 테크앤로의 구태언 변호사는 "애플의 참여는 'WD에 회사를 넘기지 말라'는 신호가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애플이 뛰어든 이후, 지난 13일 열린 이사회에서 도시바는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재지정했다. 앞서 WD와 홍하이그룹도 애플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애플이 한·미·일 연합을 선택하면서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

한·미·일 연합이 인수 총액으로 알려진 약 2조4000억 엔(약 24조원)중 연구·개발 지원금 4조1000억원을 추가 베팅한 것도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다. 한미일 연합과 비슷한 인수금액을 써낸 WD가 "향후 반도체 사업의 지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제안하면서 막판 타결에 나섰지만, 현금 한 푼이 아쉬운 도시바로서는 4조원의 추가 베팅은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홍하이 그룹은 가장 많은 액수를 써냈지만, 중화권에 도시바를 내줄 수 없다는 여론이 걸림돌이 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년 연속 자본 잠식 상태인 도시바는 내년 3월 말까지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라는 채권단 요구에 부딪혀왔다"며 "중화권에 매각할 경우 '반도체 주권'을 뺏긴다는 일본 내 여론에 발목 잡혀 매각 작업이 더 지지부진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미·일 연합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이끌고, SK하이닉스·애플·델·시게이트·킹스톤테크놀로지 등이 참여한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지분 49.9%를 보유할 베인케피탈에 현금을 대출하는 형식으로 도시바 지분 약 15%를 간접 보유하게 된다.

도시바 인수로 SK하이닉스는 '기술과 특허'라는 양날개를 얻게 됐다. 메모리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로 나뉜다. 낸드는 전원이 끊어지면 데이터가 날아가는 D램과 달리 데이터를 저장한다. 스마트폰에 사진이나 음악, 동영상을 저장해두고 꺼내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낸드 덕분이다. USB나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이 낸드플래시를 사용한 대표적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세계 2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낸드플래시에서는 10.6%의 점유율로 5위권에 머물러있다.

중국의 추격을 늦출 수 있게 된 점도 성과로 꼽힌다. 중국은 한국·일본에서 반도체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중국이 반도체 수입에 쓰는 돈만 연간 260조원(올해 기준)에 달한다. '부품 예속'이 심해지자 중국은 2015년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 뒤 매년 수십조원의 투자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 내년부터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가 본격 양산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1∼2년으로 줄어들었는데 도시바를 안게 되면 낸드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한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인수 효과에 대한 신중론도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경영권 지분을 직접 인수하는 형태가 아니어서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인수 참여 목적은 도시바의 기술과 생산량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매각 후에도 지분의 50.1%를 보유할 일본 측이 SK하이닉스에 이를 어는 정도 공유할 지가 인수 효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이창균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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