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빠른 모바일 대출, 그런데 말입니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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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소기업에 취직한 지 석 달 된 김모(26)씨는 지난달 카카오뱅크 ‘비상금대출’을 신청했다. 신용등급 6등급으로 이미 은행권 대출을 거절당해봤던 터라 대출한도가 나오는지 알아나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회 결과 100만원까지 연 8%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당장 돈 쓸 곳은 없었지만 일단 대출을 신청했다”며 “대출이 실행되기까지 실제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카뱅 효과, 시중은행 따라하기 열풍 #서류 제출 없이 1~3분이면 뚝딱 #금리·서비스 경쟁에 소비자 반겨 #대출 급증에 ‘제2 카드 대란’ 우려도 #일각선 “빅데이터 규제 풀면 해결”

‘쉽고 빠른 소액 간편 대출’이 은행권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주로 소액 급전이 필요한 고객을 대상으로 서류 제출 절차 없이 1~3분의 짧은 시간 내에 모바일로 신용대출을 내주는 상품이다.

지난 7월 말 출범한 카카오뱅크의 비상금대출은 카카오뱅크 전체 대출 건수의 53%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60초면 충전 끝’이라고 홍보하는 이 상품은 신용등급 1~8등급이면 직장인, 자영업자는 물론 주부도 최대한도 3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출범 한 달을 맞은 지난달 27일까지 전체 대출 잔액은 1조4090억원으로, 이 중 6.9%인 972억원이 비상금대출이었다. 비상금대출의 1인당 평균 대출 금액이 100만원대로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실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에 대응해 대형 시중은행도 비슷한 상품을 잇따라 내놨다. 국민은행 ‘KB리브간편대출’은 기존 은행 거래 고객이면 300만원까지 공인인증서 없이 쉽게 대출받는 상품이다. 18일 신한은행이 출시한 모바일 전용 대출상품인 ‘포켓론’은 신용카드만 있으면 신한은행 거래 내역이 없더라도 3분 안에 50만~500만원 한도로 대출해 준다. KEB하나은행 역시 SK텔레콤과 손잡고 만든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핀크’를 통해 ‘하나핀크 비상금대출’ 출시를 준비 중이다.

쉽고 빠른 대출은 모바일을 통한 비대면 금융거래가 늘면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류 제출이나 대면 심사 없이도 은행이 얼마든지 개인별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금리와 한도를 정할 수 있다”며 “인터넷은행 출범으로 촉발된 은행권의 가격(대출금리)과 서비스(편리성) 경쟁은 소비자 편익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기존엔 쉬운 대출을 찾아 고금리 카드론이나 대부업체로 갔던 중신용자들의 제1금융권 접근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은행권 대출 경쟁이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사태’를 연상케 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쉽고 빠른 대출이 가계대출 급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으로 과잉 대부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400만 신용불량자를 낳았던 2000년대 초반 신용대란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건전성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위험관리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은행이 쉬운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려가고 있는데도 금융감독당국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며 “앞으로 금리가 오르고 대출을 상환하는 시점이 오면 부실이 늘 수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이 부실화하지 않도록 대출 실행 단계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한다. 대출 건전성이 우려된다면 규제를 강화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비대면으로도 제대로 대출 심사를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정부가 빅데이터 규제를 확 풀어서 인터넷은행이 심사 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면 대출 부실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대출을 실행할 때 알리바바 상거래 내역과 세금 등 공공데이터를 포함해 10만 개 정보를 활용하는 중국의 인터넷전문은행처럼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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