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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괴테 노래 서울서 되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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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그들은 이제 내 노래 듣지 못하네/ 내 첫 노래 들어주던 그 영혼들/ 우정으로 들끓던 모임은 사라져 버리고/ 멎었구나, 아! 그 첫번째 반향/ 내 노래 이제 낯선 무리들에 울려 퍼질 뿐/ 그들의 박수마저 내 마음 불안케 하네/ 내 노래 전처럼 아직 살아있다 해도/ 온 세계에 흩어져 헤매고 있네….'

괴테는 '파우스트' 서문에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다. 몇몇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낭송되던 전통적인 시(詩)의 존재 방식이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한 것일까.

아니면 60여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들어줄 아내와 아들이 이미 저 세상 사람임을 한탄한 것일까. 괴테는 며느리 단 한사람을 앉혀두고 '파우스트' 1, 2부 전체를 낭송한 후 얼마 안돼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백70년이 흐른 지금, 지구 반대편 서울에서 괴테의 '파우스트'가 되살아난다. 괴테의 말대로라면 '온 세계에 흩어져 헤매고 있는' 자신의 노래를 그의 팬들이 다시 부르는 것이다.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회원들은 28일 오후 3시 마포 이원문화센터에서 '파우스트' 시극 낭송회를 연다.

"우리는 괴테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어요. 그냥 '독일이 낳은 세계적 문호' 정도로만 알고 있죠. 하지만 괴테는 이보다 훨씬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장인 이상복(李尙馥.69)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청소년 시절부터 괴테의 열렬한 추종자다. 한국전쟁이라는 경황 중에 의대에 진학했지만 그는 스스로 '문학청년'이라 부를 만큼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다. 특히 괴테의 글은 젊은 시절 방황하는 그에게 벗이요, 스승이었다.

그는 "괴테는 식물학.의학.자연과학 등 광범위한 영역에 지식을 쌓았습니다. 심지어 해부학에서 턱에 조그만 뼈를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철학적 소양도 많이 쌓은, 참 매력적인 사람입니다"라고 평가했다.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은 괴테 탄생 2백50주년인 1999년 李회장, 박찬기 고려대 명예교수, 박찬웅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도 전 국회의원 등 스무명이 의기투합해 결성했다. 이들은 매달 마지막 화요일 오후에 모여 괴테에 관한 토론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번 시극 낭송회는 회원들이 지난해 '괴테 시에 의한 가곡의 밤'에 이어 두번째 마련한 행사다. '파우스트' 1.2부 전체를 모두 낭송하려면 스물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요 부분만 뽑아서 두 시간 짜리로 압축했다. 예술원 회원인 김정옥씨가 연출을 맡았고, 극단 자유의 동인들이 시극을 낭송한다.

이 모임 회원이면서 '파우스트''서동 시집' 등 괴테의 글을 번역 출간한 최두환(崔斗煥.68)전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파우스트'는 젊은이들이 읽기엔 좀 어렵습니다. 인생을 관조해야만 그 맛을 알게 되지요.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사상 등 지난 3천년 간의 지식이 그 안에 녹아있는 만큼 꽤나 의미있는 글이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독서를 하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내비친 두 사람은 "괴테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환영, 젊은이들이라면 더욱 더 대환영"이라며 시낭송회와 모임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02-6356-6679.

박지영 기자<naza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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