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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미당 없는 문학사 상상하기 어려워…미학적 성취, 삶의 흠결 함께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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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Deep inside│전집 완간으로 본 미당

미당 서정주 전집 3
서정주 지음, 은행나무

미당 65년 저술 거의 담아냈지만 #부역 논란 된 글 누락은 아쉬워 #시인이기 이전 신들린 아픈 사람 #세상사에 적응하는 운명론 낳아 #모순된 삶, 시적 성취는 같은 뿌리 #하나를 빼고 다른 것 알기 어려워 #최근 격한 비판 조급한 측면 있어 #역사 청산과 문학적 처방 함께 필요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는 한국시 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흔히 운위된다. 상상력의 폭과 깊이는 물론 독창적인 언어 운용에 있어서, 그리고 겨레의 정서적·사상적 전통을 탐구한 시 정신에 있어서 그렇게 평가된다. 그러나 친일, 친독재 경력을 지목한 비판 또한 끊이지 않아 왔다. 2000년 미당 타계 직후나 최근의 비판들은 그의 시적 성취를 부정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당 문학 전집’이 5년 여의 노력 끝에 총 스무 권으로 완간되었다. 공교롭다면 공교롭다. 전집의 방대한 규모와 완성도는 자랑할 만한데, 책 주인에 대한 원성이 높다.

미당은 무려 65년 동안 문인으로 활동하며, 이 땅의 어느 시인들보다 많은 양의 저술을 남겼다. 이 전집의 일차적 의의는 각종 지면에 흩어진 원고들을 수습하고 망라하여, 체계적으로 정돈하고 정확히 다듬어 실었다는 데 있다. 이전의 전집들은, 미당의 시력을 다 아우르지 못했거나 다른 저술들을 생략한 것이었다. 새 전집은, 문학사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문필활동 전부를 담아내었다.

정본 확정 과정에서 첫 발표지와 초판 시집들과 시선집, 그리고 이전의 전집은 물론 시작 노트까지 두루 검토한 사정을 보면, 간행위원들의 성실성에 더해 어떤 소명의식까지 느껴진다. 자주 작품을 수정한 데다 판본마저 다양한 미당의 시를, 낱말과 구두점 단위까지 삼엄히 교열하고 꼼꼼히 주석하였다. 이 과정을 거쳐 ‘부활’의 ‘유나’와 ‘수나’와 ‘순아’들은 ‘수나’로 결정되었고, ‘선운사 동구’의 ‘상기도’ ‘시방도’ ‘아직도’ ‘오히려’들은 ‘상기도’로 확정되었다. 이런 수고로운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앞으로의 미당 시 인용에서 이 전집 의존도는 높아갈 것이다.

전집은 또, 적지 않은 양의 산문들을 새로이 분류하여 정리했고, ‘사소의 편지 1’ 등 누락 시편들을 추가했지만, 해방 이전과 이후에 남긴 부역문헌들을 싣지 않은 것은 아쉽다. 비판론들의 근거 자료라는 점보다도 이 작품들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떻게든 입을 열어, 결국은 말을 한다. 별 문제가 없다면 편히 싣고, 중대하다면 용기를 내어 포함시킬 수 있었지 않을까.

미당 서정주의 전집이 출간됐다. 전집은 모두 20권이나 된다. 86세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미당은 거의 거르는 날 없이 글을 썼다고 한다. 좋은 작품이 물론 많지만 안 좋은 작품도 있다. [중앙포토]

미당 서정주의 전집이 출간됐다. 전집은 모두 20권이나 된다. 86세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미당은 거의 거르는 날 없이 글을 썼다고 한다. 좋은 작품이 물론 많지만 안 좋은 작품도 있다. [중앙포토]

미당에 대한 비판은 늘 시와 삶의 관계를 두고 촉발되었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사실 이 둘을 분리하자거나 하나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칼로 자르듯 나뉘지는 않는다. 시와 삶, 또는 시의 화자와 시인을 나누어 보자는 것은, 엄정한 작품 이해를 위한 이론적 구분이지 불변의 원칙이 아니다. 통상 서정시에서 시인과 화자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구분된다 하더라도 작품 뒤에 선 시인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행적을 들어 미학적 성취를 외면해 온 사례가 드물지 않기에, 그의 시를 시 자체로 보려는 입장 또한 이해할 만하다. 결국, 행적 비판에 안주하려 하거나 시 옹호에 매달리려 하는 관성적 편향이 문제인 듯하다.

평행선을 그리는 이 대립은, 빼어난 시와 삶의 흠결이라는 쌍생아를 낳은 동일한 근원, 즉 미당의 정신적 체질을 무의식 층위에서 살필 때 완화될 것도 같다. 그의 초기 시편들은 방황과 애욕과 일탈의 기록인데, 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병’이다. 미당은 시인이기 전에 ‘아픈 사람’이었고, 언어 기술자이기보다는 플라톤이 말한 대로의 ‘미친 시인’에 가까웠던 사례다. 미친 시인이란, 비상하게 기법을 연마한 시인들의 작품조차 광채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작품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 원인 모를 병고에 시달리는 화자의 상태가 중요한 것은, 그의 시어가 지닌 발성과 성량과 음색이 우리 시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 중 하나는, 한국적 샤머니즘인 무속의 정신현상과 관련된 독특한 분열증이다. 새 전집에서 ‘서풍부’를 예로 든다.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오갈피 상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 발 상무 상무

노루야 암노루야 홰냥노루야
늬 발톱에 상채기와
퉁수 소리와

서서 우는 눈먼 사람
자는 관세음.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한바다의 정신병과
징역시간과

어지간히 명민한 분석으로도 이 시의 팽팽한 행간과 리듬을 해명하기 어렵다. 저승 바람과 요란한 음악 속에서 춤추는 여자는 죽은 넋이거나 착란이 불러낸 무의식의 이미지인데, 환각의 고통을 덜어줄 관세음보살은 자고 있다. 보살도 구해주지 못하는 고통을 화자는 ‘정신병’이라 부르고, 막막한 병의 근원을 ‘한바다’로 은유하는 한편, 벗어날 길 없는 감옥이라 여겨 ‘징역시간’으로 묘사하였다. 미당은 이 시를 두고, ‘지옥의 긍정’이라 술회한 바 있다.

‘서풍부’에 더해, ‘도화도화’ ‘문’ ‘행진곡’ ‘밤이 깊으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등 초기 시집들에 산재하는 이 어두운 계열의 시들은, 이후의 시세계를 심층에서 규정하는 대표작들이다. 이 시편들에서 미당은, 현실규범과 의식의 저편으로 힘겹게 나아가, 내면의 지옥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의 형상을 건져 올렸다. 그것은 그저 욕망에 포획된 인간은 아니었고, 시의 리듬이나 이미지의 문양을 보건대 그때껏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그러나 우리 자신의 숨겨진 얼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는 시로써 고통 받는 인간의 의미를 새로이 했고, 그런 만큼 한국시의 발상과 표현에 낯선 힘을 불어넣었다. 이 성취는 무속에 뿌리를 둔 분열증과 광기에 힘입은 바 컸다.

미당은 그저 기교가 뛰어난 시인이 아니었다. 그의 시어는 신들린 듯한 것이어서, 내면의 절규가 시의 문법을 지닌 채 튀어나온 것 같은 형국을 보여준다. 무엇이든지 손에 들고 놀리면 시가 되어 버린다는 상찬 자체가, 단순한 언어 기술보다는 시적 상태를 활달히 빚어내는 정신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거듭되는 재난 앞에서 말문이 막힌 우리 시대의 시인들은, 미당 시의 심층 문법에서 유익한 자극과 암시를 구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도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 있는 텍스트다.

1950년대 이후에 미당은, 사제가 신을 알아가듯 자기 증상의 연원을 찾아 신라로, 불교로, 설화의 세계로 상상력의 무대를 옮겨갔다. 여기에 깃든 신비 취향과 관념성을 지적하는 비판들은 대체로 타당하다. 설화와 역사서의 사실들을 가공한 시편들은, 한국인의 심성과 미의식을 재조명하여 민족사의 후미진 갈피들에 광채를 주었으나, 역사의식에 깊이를 더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초기 시의 자폭적 광기는 이 과정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미당의 시력은 내면의 혼돈을 극복해 간 여정이고, 그 최종 국면이 바로 영생주의다. 해탈과 초월로 자주 혼동되는 이것은 그러나, 그가 지상의 삶에 유별난 애착을 보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현세주의다.

그런데 기층 신앙의 현세주의에는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재는 이성적 척도와 윤리가 없다. 이 전근대성은, 인간의 행불행을 외계의 낯선 힘으로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운명론으로 귀착한다. 그리고 무속의 운명론은 세상사에 대해 ‘적응’이라는 태도를 낳는다. 무속의 제일 목적은, 화 없이 복을 누리는 생존의 확보에 있다. 미당은 현실규범의 공리적 의미와 사회적 삶의 복잡성을 바로 이 차원으로 구부렸다. 그의 순응주의는 이 적응 논리와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미당의 분열증은 시에 영감을 불어넣은 힘이었지만, 이성적 규범과 도덕적 삶에 대한 의식을 약화시켰다. 모순된 삶과 시의 성취는 같은 뿌리의 두 가지인 셈이다. 따라서 하나를 빼고는 다른 하나를 알기 어렵다. 미당 문학에 대한 평가는 이 둘을 껴안은 채로 공과 과의 내적 연관을 더 깊이 따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없이 요긴한 자료가 이번의 새 전집이다. 생략된 시편들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지고 있다. 새 전집의 또 다른 의의에는 이것까지도 포함될 듯하다.

최근의 격한 미당 비판은 일부 조급한 면이 있다. 적폐를 청산하여 역사의 근기를 마련하자는 생각의 당위는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 문학에 대한 검토가 빠져서는 안 된다. 역사의 외과수술과 함께 문학 내부의 내과 처방 역시 필요하다. 그를 기리는 행사들이 더 작고 조용한 양상을 띨 필요는 있어 보이지만, 미당 없는 문학사를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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