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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 보고 나면 왜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

중앙일보

입력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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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이건 특별한 소년의 가슴 아픈 성장담이 아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몇 번이고 감내해야 하는 상실에 관한 보편적인 얘기다.

판타지영화 #'몬스터 콜' 들여다보기

‘몬스터 콜’(9월 14일 개봉,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열두 살 코너(루이스 맥더갤)가 고통스런 운명에 마주하는 과정을, 스산하고 아름다운 판타지로 풀어낸다. 상처의 시간을 그리는 성숙한 시선, 섬세하게 조율된 현실 묘사, 흡입력 높은 판타지까지. 스페인 출신 바요나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엿보이는 건 물론, 곰곰이 되짚을수록 우리의 과거를 돌이키는 치유의 힘까지 느껴진다. 이 영화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렵고 아픈 게 당연하지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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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의 아침, 혼자 일어나 교복을 입고 빵을 먹고 나서는 등굣길. 코너가 익숙하게 자질구레한 일상을 착착 해내는 이유는 엄마(펠리시티 존스)가 아파서다. 아버지(토비 켑벨)는 이혼 후 미국으로 떠났고, 종종 엄마를 보살피러 오는 외할머니(시고니 위버)는 엄격하고 무섭다. 학교에선 또래들에게 린치를 당하기 일쑤. 한 마디로 코너의 삶은 고통 그 자체다.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위로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순간 상상만 했던 나무 괴물(목소리 출연·리암 니슨)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는 “이제부터 세 가지 동화를 이야기해줄 테니, 마지막엔 너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한다.

큰 줄기는 동명 원작 소설을 따른다. 이 소설을 시작한 건 영국 여성 작가 시오반 다우드였다. 그는 주요 캐릭터와 첫 장면 등 1000개 단어 분량의 글을 남기고 2007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작가 패트릭 네스는 편집자로부터 마무리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이 소설을 완성했다. “코너의 감정을 거짓되거나, 과하게 그리지 않으려 했다. 그가 얼마나 아팠는지에만 집중했다.” 네스의 말이다. 그는 영화의 각본 작업에 참여하며, 원작에 드러난 감정의 결을 고스란히 살렸다.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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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이 영화는 코너가 처한 상황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앞에선 희미하게 따뜻한 웃음을 내보이지만, 할머니와의 갈등 앞에선 쓰레기통을 부서지게 걷어차는 열두 살 소년.

코너는 어머니의 죽음을 직감하지만, 이 커다란 비극을 쉬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책하고, 주변 사람을 향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 절망에 빠지는 코너. 그는 상실의 두려움을 직면할 수 있을까.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란다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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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괴물이 코너에게 들려준 세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왕위를 지키려 사악한 행동을 한 왕자, 믿음 없는 목사와 자신의 믿음만 고수한 약제사 등. 공통적으로 복잡한 상황에 놓은 인간의 선택에 관한 얘기다. 세상엔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동화라고 하기엔 냉정한 이야기들.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라는 것. 이건 코너가 현실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교훈처럼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나무 괴물은 어떤 존재일까. 첫째는 코너의 마음 깊숙이 사는 내면의 자아다. 코너의 외로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그는 나타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싱크대를 닦을 만큼” 조숙한 코너가 외할머니 집의 가구를 때려 부술 때도, 괴롭히던 친구를 병원에 실려 갈 만큼 팰 때도 그가 함께 한다. 무의식과 묵혀둔 감정 속에 살고 있는 괴물.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그런 존재다. 바요나 감독은 “그는 아직 마주하지 못한 스스로의 성격을 뜻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는 엄마와의 기억으로 만든 크고 희망적인 자아다. 코너의 엄마는 언덕 위 나무를 “우리의 믿음”이라며 “그 나무엔 생명력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엄마와의 대화에 상상이 투영돼 나타난 존재. 그는 절망의 끝에서 코너를 일으켜 세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무 괴물의 동화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엄마가 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삶의 어떤 위로와 힘을 주는지, 이 영화는 나무 괴물이라는 환상적 존재로 힘줘 말한다.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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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현실적인 맨체스터 풍경에 나무 괴물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점이다. 손을 뻗으면 거친 나무의 질감을 느껴질 만큼. 제작진은 “100% CG 영상의 인공적인 느낌을 지양하기 위해, 괴물을 직접 만들었다”고 밝혔다. 코너를 잡아채는 큰 손, 창문 밖에 보이는 큰 머리 등을 만들어 부분적으로 CG를 덧붙였다. “나무의 경직된 느낌과 무게감을 살리려 30여 명의 미술팀원이 세 달에 걸쳐, 재료를 깎고 그을리고 칠을 했다”는 바요나 감독의 말이다.

혼을 내서 뭐하겠니  

'몬스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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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나리오 모두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가 경험하는 것, 느끼는 것, 무서워하는 것 모두. 진정한 사랑이 느껴졌다.” 시고니 위버의 말이다. 그의 말이 더욱 와 닿는 건, 극중 코너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 때문이다. 외할머니, 아버지, 교사 모두 코너를 절대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다. 설령 코너가 치기어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폭력을 저질러도 말이다.

아끼던 고가구가 박살난 것을 목도한 외할머니는 아연실색하면서도, 코너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코너와 가구를 치우던 아버지도 그를 혼내지 않는다. 친구를 때리고 불려간 교장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혼을 내서 뭐하겠니” 라고 덤덤히 말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잃게 될 어머니이며, 아버지는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다. 이들은 각자의 슬픔을 견디는 동시에, 코너를 향한 측은지심을 잃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반응. ‘몬스터 콜’이 인간을 향한 깊은 믿음과 품위를 지킨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몬스터 콜'

'몬스터 콜'

이 영화는 과한 극적 장치를 활용해 코너를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우리 모두가 겪어온, 혹은 겪어야 할 슬픔을 조금 일찍 알게 된 소년일 뿐이라고. 누구에게나 코너 같은 시절이 있고, 그 시기를 이겨낼 진솔한 힘은 우리 안에 있다고. 흔하지만 비범하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론 쉽게 깨닫지 못한 메시지. ‘몬스터 콜’이 어른 관객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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