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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소 분리 외치는 황운하 부임한 뒤…울산 검찰·경찰 ‘고래 싸움’ 붙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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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울산에서 경찰이 압수한 밍크고래 고기를 검찰이 피의자들에게 돌려줘 논란이 이는 가운데 경찰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검사)을 수사하기로 했다.

작년 경찰이 압수한 고래고기 21t #검찰, DNA 검사 결과 나오기 전 #피의자에 반환 뒤늦게 알려져 #경찰 “돌려준 근거 뭐냐” 검찰 수사 #황 청장은 “수사권 갈등 아니다”

황운하(55) 울산지방경찰청장은 14일 “고래고기 반환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을 역임한 황 청장은 평소 경찰 수사권 독립,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주장해 왔다. 경찰은 검사 소환 등 수사 방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앞서 고래보호단체인 핫핑크 돌핀스는 지난 13일 울산지방경찰청에 지난해 울산지검 소속으로 고래고기를 돌려주라고 지시한 A검사를 고발했다. 핫핑크 돌핀스가 주장하는 혐의는 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이다. 핫핑크 돌핀스는 “고래연구소의 유전자(DNA) 분석을 통한 합·불법 여부가 가려지기 전에 울산지검이 압수물을 돌려주기로 결정한 것은 명백한 실수다. 검사 개인의 실수인지,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래고기 반환 사건은 이렇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지난해 4월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해 유통한 일당을 검거하면서 냉동창고에 있던 40억원 상당의 밍크고래 고기 27t을 압수했다. 밍크고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라 법적으로 포획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그물에 걸려 있는 고래의 포획(혼획)은 합법이다. 그래서 불법 포획인지 혼획인지 가리기 위해 수사기관은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DNA 검사를 의뢰한다. 압수한 고래고기의 DNA가 연구소에 보관된 혼획 고래의 DNA와 일치하면 혼획한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고래연구소가 혼획 고래의 DNA를 70% 정도만 가지고 있어 불법 포획의 결정적 증거로 삼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경찰로부터 고래고기를 넘겨받은 이후 검찰의 조치다. DNA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지난해 5월 검찰은 당시 피의자들에게 고래고기 21t을 돌려줬다. 경찰에 반환을 지시했지만 “DNA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돌려줘서는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검찰이 직접 압수품을 돌려줬다. 1년여 뒤인 지난 8월 검찰이 남은 6t의 고래고기 압수물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21t을 피의자들에게 돌려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검경 간에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이에 대해 “DNA 분석 결과를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범죄 증거물로 확신할 수 없는 대량의 사유물을 소유자에게 돌려준다’는 형사소송법 원칙을 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나온 DNA 검사 결과 47개 시료 중 DNA 추출이 불가능한 지방조직을 제외한 34점이 모두 불법 유통된 고래인 것으로 연구소는 추정했는데, 검찰은 최근까지도 이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 청장은 “폐기해야 할 고래고기를 포경업자들에게 돌려줘 결과적으로 이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며 “당시 경찰이 고래 해체 현장을 덮쳤고 피의자들이 동종 전과가 있는 등 불법 포획을 추정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이 있었음에도 검찰이 무슨 근거로 압수한 고기를 돌려줬는지 밝히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를 검경 수사권의 충돌로 본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간부는 “울산청은 고래고기 불법 유통에 대한 수사 노하우가 있는 데다 황 청장 취임 후 4개 경찰서 지능수사팀원을 지방청으로 차출해 고난도 수사를 전담하는 시스템도 갖췄다”며 “울산청에서 대대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황 청장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은 손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청장은 “진상을 명백하게 밝히려는 것일 뿐 이 사안을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건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며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황 청장은 지난 8월 부임했다.

울산=최은경·이은지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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