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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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겨우 울음을 멈춘 무송이 왕노파에게 무대 형님이 어디에 묻혔는가 물었다. 왕노파가 무덤을 쓸 돈이 없어 화장을 하고 말았다고 하자 무송이 또 울음을 터뜨렸다.

"형수는 어디로 갔소?"

"남편 백일상을 지낸 후에 친정으로 간다면서 갔는데 아직 소식이 없소. 남편도 없고 돈도 없이 젊은 여자가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소문에 듣기에는 친정 어머니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하는데 어디로 시집을 갔는지는 나도 잘 모르오. 무송 대장도 형수는 찾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제 살길 찾아간 형수 만나서 무얼 하겠어요? 죽은 형님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 제 살길 찾겠다고 영아를 버려두고 갔단 말이오?"

무송이 어깨숨을 쉬며 씩씩거렸다.

"버려두고 간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두고 갔어요. 형편이 나아지면 영아를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했는데 그 말은 믿을 게 못 되고. 내가 양녀 하나 생긴 셈 치고 키우고 있었는데 이제 삼촌이 돌아왔으니 삼촌이 맡아야지."

"근데 애가 왜 저렇소? 전에는 똑똑한 애였는데."

"아버지 죽고 계모는 훌쩍 떠나가버리고 해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어요. 하지만 이제 삼촌이 왔으니 나아지겠지."

"좋소. 영아는 할멈이 당분간 더 맡아주시오. 나는 할 일이 남아 있소."

무송이 비장한 기색을 내비치며 총총히 숙소로 돌아갔다. 무송은 방에서 한참 머리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사병을 시켜 하얀 상복과 삼베 두건과 베신을 사가지고 오게 하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복으로 차려입은 무송은 다시 무대네 집으로 돌아와서 과일과 고기, 술, 향과 초, 종이돈 들을 진열하여 제사상을 차렸다. 그리고 무대 위패를 새로 만들어 지방을 써 붙였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무송이 제사상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통곡하였다.

"형님, 무송이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다니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강도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먼 출장길을 다녀온 나는 살아 있고, 멀쩡하게 집안에 계시던 형님은 황천길을 가시다니요? 그것도 무덤 하나 없이 불길 속에서 한줌의 재로 변하여 허무하게 산야에 흩어지다니요? 형님이 살아 계실 때도 무골충이라 하여 '삼촌정 곡수피'라고 놀림을 받더니 돌아가실 때도 흐리멍텅하게 가셨군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형님, 형님 죽음에 내가 알지 못하는 곡절이 있으면 이 시간 혼령이나마 나타나셔서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아니면 꿈에라도 나타나셔서 일러주십시오. 형님이 원한을 품고 돌아가셨다면 제가 반드시 그 원한을 갚아드리겠습니다."

무송은 술을 따라 올리고 지방과 종이돈을 태우면서 또 목놓아 울었다. 그 울음이 너무 커서 이웃사람들이 모두 무대네로 몰려와 기웃거리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염려하였다. 밤중이 되어 제사를 도운 사병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무송은 제사상 앞에서 돗자리를 펴고 몸을 뉘었다. 사병들은 저쪽 구석에서 자도록 하고 영아는 방안에 들어가 자도록 하였다.

무송은 몸이 피곤할 대로 피곤하였으나 잠은 영 오지 않았다. 혹시 사병들이 영아를 건드리지 않나 하고 사병들 쪽을 돌아보니 사병들은 이미 코를 골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무송은 다시 일어나 무대 위패 앞으로 가서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제사상 위에는 등잔 불이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등잔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불이 흔들릴 적마다 불꽃이 길게 늘어져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그때 또 한줄기 찬바람이 제사상 밑에서 불어와 등잔불을 더욱 세게 흔들어대었다.

무송은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머리끝이 쭈뼛 섰다. 제사상 밑에서 불어온 찬바람은 어느새 사람 모양을 하고 무송 앞에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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