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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창업보다 더 중요한 건 창업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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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 대표이사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크루셜텍㈜ 대표이사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 체계와 지원 제도가 마련된 지 20년을 넘어섰다. 최초 벤처정책이 수립될 시점에는 국내에 벤처기업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고 벤처업계도 대부분 창업초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양한 스펙트럼의 벤처기업이 등장했고 벤처 생태계도 활성화됐다.

벤처정책, 스타트업에만 집중된 편 #창업 뒤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등 #벤처 생태계 전반에 걸친 정책 필요 #소프트웨어·제조 기업 함께 키워야

최근 정부에서 발표하는 일련의 벤처활성화 대책이 창업초기의 스타트업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번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스타트업을 넘어 전체 벤처 생태계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도입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메사추세츠 공대 구즈만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일자리는 질 좋은 창업(startup)의 성장과정(scale-up)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창업보다는 창업한 회사를 키우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우리의 일자리 해법과 벤처정책의 방향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혁신적인 기술창업(startup)으로 일자리의 물꼬를 트고, 기술을 보완하기 위한 우수 인력 유입과 M&A 활성화 등 벤처 생태계 완성을 통해 중견·대기업 수준의 벤처기업으로 성장(scale-up)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지속 가능한 고용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실제 벤처기업협회와 창업진흥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업기업의 평균종사자수는 3.2명에 불과하나 벤처확인기업의 평균종사자수는 23명,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을 달성한 천억벤처기업의 평균 종사자수는 378명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기 벤처정책 수립을 위한 벤처특별법 개정안 논의과정에서 벤처기업확인제도를 창업 초기 기업 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전체 벤처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발상이다. 벤처특별법 제정 당시(1997년)와는 달리 이제 국내 벤처생태계는 ‘창업→도약→성장→글로벌화’ 등 다양한 성장 유형별 벤처기업이 포진해 있다. 좁은 시각으로 벤처정책의 대상범위를 한정지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스타트업 단계의 벤처기업은 좋은 아이디어와 차별화된 기술 인력을 가지고 있으나 자금지원이 절실하다. 반면 성장 궤도에 오른 벤처기업은 당장의 자금 지원보다 공정한 경쟁 환경이 더 중요하다. 유니콘 단계의 벤처기업은 글로벌 시장으로 비상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벤처생태계 전반에 걸친 체계적 지원과 정책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벤처는 기업의 규모가 아니라 기업의 속성 가운데 ‘혁신성’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창업 이후 40년이 넘은 애플과 구글, 아마존은 여전히 벤처기업으로 인식된다. 벤처는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벤처의 속성이 살아있는 한 지속된다. 벤처정책도 창업만 유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창업기업들이 혁신을 거듭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벤처생태계 전반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펼쳐져야 한다.

쉬운 창업의 확산을 위해 서비스 분야와 앱 수준의 소프트웨어에만 편중된 창업 정책에서 벗어나 하드웨어·제조벤처를 함께 육성하는 밸런스도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을 근간으로 ICT가 함께 융합 되는 게 특징이다. 아무리 뛰어난 ICT 인프라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제조분야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위를 가지기는 요원하다. 미국, 독일, 일본, 대만 등은 이미 국가 중점사업으로 첨단제조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제조업의 경우 창업과 성과를 내기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므로 특히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이번 정부의 핵심부처이자 벤처정책을 총괄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이 지연됨에 따라 중소벤처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혁신창업이 기존 산업을 급격히 대체하고 있다. 향후 5년은 대한민국 벤처가 글로벌 벤처강국을 추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으로 기업인과 정부는 협력해야 한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크루셜텍㈜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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