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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어디까지 가봤니? 직접 만든 배로 3년간 한강탐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랑랑프로젝트의 안성석 정혜정씨가 서울 반포지구 한강에서 호락질호를 타고 달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랑랑프로젝트의 안성석 정혜정씨가 서울 반포지구 한강에서 호락질호를 타고 달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올여름 서울시가 잠수대교를 백사장처럼 꾸미려다 계획이 무산됐다. 만약 제대로 실행됐다면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한강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흑백 사진첩에는 한강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목욕하고 물놀이를 즐기던 풍경이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의 한강은 왜 이렇게 재미없는가.

가까이 있지만 풍덩 빠져 즐기지 못하는 한강 #직접 만든 ‘호락질호’ 타고 강 구석구석 탐험 #사진가는 회전의자에서 드론 띄워 풍경 찍고 #화가는 파도 연구하며 라이브 드로잉 쇼 #“친근하고 아름다운 강으로 다가설 수 있길”

사진가 안성석씨가 오래 전 한강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에 색을 입혔다. [사진 랑랑 프로젝트]

사진가 안성석씨가 오래 전 한강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에 색을 입혔다. [사진 랑랑 프로젝트]

젊은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에서 만나 친구가 된 화가 정혜정(31)과 사진가 안성석(31), 두 사람이 2014년 뜬금없이 ‘한강 탐구-랑랑(浪浪)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어요. 매일 한강을 지나지만 정작 강에 풍덩 몸을 담그고 수영하며 놀았던 기억이 내게는 왜 없을까. 우린 한강변을 따라 걷는 건 가능하지만,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잖아요.”(정)
“직접 배를 만들어서 일단 강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했어요. 우리 삶에서 ‘접힌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안)

랑랑프로젝트를 함께한 화가 정혜정(왼쪽)씨와 사진가 안성석씨. 최정동 기자

랑랑프로젝트를 함께한 화가 정혜정(왼쪽)씨와 사진가 안성석씨. 최정동 기자

곁에 있지만 결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한강의 구석구석을 직접 보고 기록하겠다는 의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탈 배 ‘호락질’호도 직접 만들었다. ‘호락질’은 '스스로 농사를 짓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스스로 배를 만들어 한강이라는 자연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다. 당시 두 사람이 있던 창작실은 작업실 안에 목공장비들이 있어서 작은 나무배 만드는 일은 쉬웠다. 문제는 ‘어떤 배를 만들까’였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도 뒤집히지 않고 다시 설 수 있는 ‘오뚝이’ 스타일,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가 강물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잠수함’ 스타일 등등. 어린 시절 상상 속 보물선을 그릴 때처럼 두 사람은 수십 개의 도면을 그리며 윤곽을 잡았다. 결국 필요조건은 3개로 좁혀졌다. 언제라도 빙글 몸을 돌려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360도 회전이 가능한 의자 2개, 그늘을 만들어주는 차광막, 그리고 안전성이다.

랑랑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어떤 배를 만들까 그려봤던 스케치 중 '오뚝이 배'.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어떤 배를 만들까 그려봤던 스케치 중 '오뚝이 배'.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 배 스케치 중 '잠수함' 스타일.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 배 스케치 중 '잠수함' 스타일. [사진 랑랑 프로젝트]

“우리 배의 바닥은 삼각형이 아니라 평평하거든요. 웬만한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아요. 지난 ‘세계 불꽃 축제’ 때 여의도 앞에 배를 띄웠는데, 그날은 배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한강에 모였다고 할 만큼 크고 작은 배들이 몰렸어요. 큰 배(요트)가 지나면서 물결이 크게 일면 우리처럼 작은 배들은 위험했죠. 실제로 그날 저녁 뉴스에 작은 배들이 많이 전복됐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우리 배는 끄떡없었어요.”(안)

랑랑프로젝트의 안성석 정혜정씨가 서울 반포지구 한강에서 호락질호를 타고 강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랑랑프로젝트의 안성석 정혜정씨가 서울 반포지구 한강에서 호락질호를 타고 강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다. 최정동 기자

배를 타고 본격적으로 강 한가운데로 나간 두 사람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한강의 현재’를 기록했다. 정혜정은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 반짝이는 파도의 모양을 그렸고, 안성식은 드론을 띄워 한강의 구석구석을 촬영했다. 한강 주변의 감시 초소, 투신자살자들을 위한 안전장치 등의 시설도 사진으로 혹은 그림으로 기록했다.

화가 정혜정씨가 그린 한강의 파도 풍경. [사진랑랑 프로젝트]

화가 정혜정씨가 그린 한강의 파도 풍경. [사진랑랑 프로젝트]

화가 정혜정씨가 그린 한강 철교 모습 중 하나. [사진랑랑 프로젝트]

화가 정혜정씨가 그린 한강 철교 모습 중 하나. [사진랑랑 프로젝트]

2015년에는 ‘호락질호의 초대’ 행사도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승선 신청을 한 관객을 태우고 정해진 코스를 돌아보는 무료 승선 프로그램이었다. 나흘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정혜정이 반포-동작-노들섬-한강철교를, 안성석이 여의도-밤섬-마포대교를 도는 코스를 운행했다.

“마포대교는 오래전부터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죠. 아래서 바라본 다리 위는 어떤 모습일까 늘 궁금했어요. 가이드를 할 때도 지금 다리 위에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서 변사처럼 말했죠.”(안)
“저의 경우는 멀리 강둑에 친구들을 세워뒀다가 배가 다가가면 노래를 부르게 했죠. 또 물고기를 방생하다록 요청해서 승선자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도 했죠.”(정)

두 사람은 3년간 시간 날 때마다 한강을 찾았고, 이때 작업한 그림·사진들을 모아 최근 책 『랑랑』(물질과 빗물질)을 냈다.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호락질호의 여러 버전들’ 스케치도 함께 담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ㄱ부터 ㅎ까지 한강 관련 단어들로 채웠다. 인터넷에서 ‘한강’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불특정 사건, 소설이나 책 속에 묘사된 한강의 모습에 관한 정보들이다. 한강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거대한 호수가 돼버린 이유인 ‘수중보’의 위치부터 국회의사당 자리에 있었다는 양말산 이야기까지, 단어 해설들은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흥미롭다.

랑랑 프로젝트가 출간한 책『랑랑』 속에 삽입된 옛날 한강 주변의 모습.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가 출간한 책『랑랑』 속에 삽입된 옛날 한강 주변의 모습.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가 출간한 책『랑랑』 속에 삽입된 옛날 한강 주변의 모습. [사진 랑랑 프로젝트]

랑랑 프로젝트가 출간한 책『랑랑』 속에 삽입된 옛날 한강 주변의 모습. [사진 랑랑 프로젝트]

첫 번째 버전의 호락질 호를 타고 있는 안성석, 정혜정씨의 모습을 친구가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 랑랑 프로젝트]

첫 번째 버전의 호락질 호를 타고 있는 안성석, 정혜정씨의 모습을 친구가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 랑랑 프로젝트]

3년간의 한강탐구를 마친 두 사람은 “한강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시민들과 친해져야 할 대상이고, 그와 안 맞게 겉도는 도시행정(예를 들어 수상택시)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또 “우리가 관심을 갖는 만큼 한강은 스스로 좋은 여행 장소로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한강의 전망 좋은 자리’를 귀띔 했다.

“잠원 지구 쪽을 걷다보면 강 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요. 그곳에 서면 한강을 270도로 조망할 수 있어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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