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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중국이 세계 유가 폭락시킬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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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은 잊어라! 이제 유가는 중국이 결정한다!” –미국 오일프라이스닷컴

전 세계 기름값, 중국 손에 달렸다는 외신보다 잇따라 #실제 올해 원유 수입만 따지만 중국이 미국을 앞서 #러시아·사우디 그리고 OPEC까지 감산 합의했지만, #美 셰일오일 쏟아지고, 中 수입 줄면 유가 하락 불가피

“전 세계 딜러들은 중국 전략비축유 수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OPEC 감산, 미국 셰일오일보다 ‘큰손’ 중국에 달렸다.” –미국 CNBC

전 세계 원유 시장의 관심이 중동·러시아·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 결과나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감산 합의 그리고 미국 셰일오일이 핵심 변수처럼 여겨졌던 시장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도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석유화공(시노펙)의 상사 자회사 유니펙은 이미 세계 최대 석유무역회사”라며 “세계 석유 시장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지난달 10일 중국 닝보항에 입항한 ‘TI 유럽’. 한번에 3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을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유조선이다. [사진 www.marine-marchande.net]

지난달 10일 중국 닝보항에 입항한 ‘TI 유럽’. 한번에 3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을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유조선이다. [사진 www.marine-marchande.net]

물론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는 중동·러시아·미국이 꽉 잡고 있다. 그런데도 원유 시장 향방을 결정짓는 나라로 중국을 꼽는다. 왜일까. ‘원유생산력’ 그 이상의 힘, 엄청난 양의 오일을 사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정말 유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팩트체크해봤다.

시노펙 원유저장시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시노펙 원유저장시설 [사진 비즈니스 인사이더]

중국,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가?

올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지난 3월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의 하루 평균 원유수입량은 각각 855만 배럴, 812만 배럴을 기록했다. 지난 40년간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자리를 지켰던 미국이 중국에 1위 자리를 뺏긴 것이다. 영국의 거대 석유회사 BP사 통계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중국 내 석유 수요 중 자국산 원유를 뺀 원유 수입 의존도는 68%에 달했다. 반면 미국은 37%로 2010년(61%)의 반 토막 수준까지 하락했다. 기타 석유화학 제품까지 포함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원유만을 따진 절대 수입량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 정유시설 플랫폼 일부를 근로자가 점검하고 있다. [사진 USA TODAY]

중국 산둥성 칭다오 정유시설 플랫폼 일부를 근로자가 점검하고 있다. [사진 USA TODAY]

게다가 중국은 미국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중국은 지난해 5월부터 미국산 저(低)등급 원유(sour crude oil)을 수입하고 있다. 올해 수입한 미국산 원유는 지난 5월까지 1000만 배럴에 달한다. 전체 하루 평균 수입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배나 늘어난 수치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산 원유보다 가격이 싼 것도 이유지만, 미국과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인 이유도 깔려있다. 덕분에 중국은 캐나다를 제치고, 미국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막대한 원유 수입량, 중국 소화 가능한가?

쓰는 것과 쌓아두는 양을 생각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중국 하루 평균 원유 소비량은 1100~1200만 배럴대를 왔다 갔다 한다. 이 중 자국 생산 원유는 하루 평균 390만 배럴 수준, 400만 배럴에 가깝다. 850만 배럴은 밖에서 들여오니 얼추 하루 평균 사용량에 맞는다. 물론 소비량에 수입량을 딱 맞출 순 없다. 수입량이 조금 더 많다고 생각하면 맞다. 중국이 십 년 전부터 상당한 양의 원유를 쌓아뒀다는 얘기가 도는 이유다.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에 있는 원유저장시설 [사진 SCMP]

중국 저장성 저우산시에 있는 원유저장시설 [사진 SCMP]

실제 중국은 떨어지는 경제 성장률과는 반대로 원유 수입량은 계속해서 늘려왔다. 지난 2010년 10.4%였던 중국 경제성장률은 지난 6.7%를 기록하며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2010년 하루 평균 450만 배럴 수준을 유지하던 원유수입량은 꾸준히 올라 올해 850만 배럴로 크게 뛰었다. 사용 안 한 원유는 전략비축유(SPR)로 빠졌다. 중국은 전략용·상업용 비축유를 얼마나 쌓았는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전 세계 원유업계가 유가 변수의 핵으로 중국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석유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 닷컴’도 이점에 주목한다. 지난해 미국 공간정보분석업체인 ‘오비탈 인사이트’가 공개한 위성자료를 인용해 “지하를 제외한 지상탱크에 저장된 원유만 계산한 결과 6억 배럴에 달했다”며 “올해 8월 기준으로 6억7980만 배럴에 달하는 미국 전략비축유 수준을 넘어섰을 것”이라고 했다.

지붕 부유식(floating roof) 원유 저장탱크 [사진 유튜브]

지붕 부유식(floating roof) 원유 저장탱크 [사진 유튜브]

오비탈 인사이트는 지난해부터 중국 전역에 퍼져 있는 지상 원유 저장탱크를 분석했다. 먼저 중국 원유탱크가 지붕 부유식(floating roof)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그리고 그림자, 저장 차량 이동 횟수 등 각종 변수 등을 넣어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계산했다. 이들은 중국 전략용·상업용 석유 저장탱크가 지난해 위성자료를 검토한 결과 2100개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사진에 나타나지 않은 지하 저장탱크까지 포함하면 2900개의 저장소, 최대 9억 배럴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지난 2011년 중국 유조선 치린호(麒麟座)가 미국 뉴저지주 베이온시 정제 공장 주변 계류장에 정박해있다. [사진 로이터]

지난 2011년 중국 유조선 치린호(麒麟座)가 미국 뉴저지주 베이온시 정제 공장 주변 계류장에 정박해있다. [사진 로이터]

중국, 세계 유가 폭락시킬 수 있다?

다수의 서구 언론과 분석기관은 다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30달러 밑으로 떨어졌던 국제 유가를 50달러 선으로 끌어올린 게 중국이라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중국이 유가를 폭락시킨다기보다는 ‘그럴 힘을 가졌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중국이 수입량을 줄이자 여기저기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원유업계가 중국이 원유수입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너무나 당연하게 중국 내 수요가 줄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덩치 큰 중국이 수입을 눈에 띄게 줄이면 유가 방어를 위해 두 손 꼭 붙잡고 감산 조치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그리고 OPEC까지 무색해질 정도로 여파가 크다.

OPEC이 생산량 줄이면 미국 셰일 업체는 늘렸다. 여기에 앞으로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까지 원유수입을 줄이면 국제유가는 급락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부 왕세자 겸 국방장관인 모하메드 빈살만 왕자와 악수하는 모습이다. 살만 왕자는 살만 국왕의 실자로 실세다. [사진·자료 중앙포토]

OPEC이 생산량 줄이면 미국 셰일 업체는 늘렸다. 여기에 앞으로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까지 원유수입을 줄이면 국제유가는 급락할 수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렘린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부 왕세자 겸 국방장관인 모하메드 빈살만 왕자와 악수하는 모습이다. 살만 왕자는 살만 국왕의 실자로 실세다. [사진·자료 중앙포토]

특히 중국의 전략비축유에 주목했다. 중국이 2년 전부터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전략비축유라는 소리다. 중국 석유업계는 배럴당 30달러 대일 때 원유를 대거 사들였다. 1970년대 미국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대미 석유수출을 중단한 이후 전략비축유 시스템을 도입했고, 1990년 걸프전 사태 이후 지금까지 6억9000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줄이고 있다. 셰일붐 덕분에 석유 자급력이 높아져 1970년대 석유파동과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1년 미-이라크 간 걸프전쟁의 한 단면(왼쪽). 폭발한 쿠웨이트 유전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오른쪽). [사진 중앙포토]

1991년 미-이라크 간 걸프전쟁의 한 단면(왼쪽). 폭발한 쿠웨이트 유전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오른쪽). [사진 중앙포토]

마찬가지로 중국도 2008년 이후 전 세계 경제에 불어닥친 경제위기 이후 전략비축유 사업에 돌입했다. 현재는 전 세계에서 6억 배럴 이상 비축한 나라로 미국과 중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전략비축유를 영원히 늘릴 수 없는 법, 목표치를 거의 다 채웠으면 이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수입량을 줄이든, 비축유를 내놓든 두 가지 가능성 모두 가능한 얘기다. 미국이 그랬다.

미국 오클라호마호에 있는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사진 ibttimes]

미국 오클라호마호에 있는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사진 ibttimes]

SIA 에너지 리서치사의 애널리스트도 “중국 내 전략비축유 저장고의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원유가 많다”며 “원유비축 수요가 줄어는 것은 물론 상업용 시설에 저장된 물량이 되레 시장에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캐나다 투자은행 RBC 캐피탈마켓과 다국적 에너지 컨설팅업체 FGE도 부정적이다. 이들도 중국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입량을 하루 평균 70만 배럴, 내년엔 80만 배럴 씩 줄여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 투자를 계획 중이다. 현재 상장 준비 중인 아람코의 시가총액은 2조 달러로 추산한다. 아람코는 한국 에스오일의 최대 주주로 중동 경제는 물론 전 세계 원유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다. 중국이 아람코에 많은 자금을 투자한다면 중국은 국제 석유시장에서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과 무역분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중국이 ‘석유’로 맞선다”는 음모론이 불거진다. 중국이 사우디에서 미국으로 흘러가는 ‘석유 달러’를 틀어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차이나랩 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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