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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기자 독일을 가다] 독일인의 포용력은 '참회의 힘' 에서

미주중앙

입력

생체실험실, 수용소 내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던 곳. 수십만 명의 산 송장이 올려졌다는 생각에 끔찍했다.

생체실험실, 수용소 내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던 곳. 수십만 명의 산 송장이 올려졌다는 생각에 끔찍했다.

전기 담벼락, 당시 수용소에는 담벼락 앞에는 강력한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다.

전기 담벼락, 당시 수용소에는 담벼락 앞에는 강력한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다.

유대인 추모비, 베를린 시내 가장 중심부에 있는 2711개의 유대인 추모비.

유대인 추모비, 베를린 시내 가장 중심부에 있는 2711개의 유대인 추모비.

일상에서 접하는 역사 흔적
주택가 옆에 수용소 보존해

작센하우젠 유대인 수용소

유대인 외 독일인들도 방문
역사 반성 독일 교육의 핵심

베를린 중심부 유대인 추모비
역사 과오 잊지 않겠다는 다짐

독일 정부는 향후 5년간 약 900억 유로가 난민 보조에 투입될 것으로 내다본다. 난민에겐 매달 정착 비용(매달 약 350유로)은 물론, 숙식과 독일 시민과 같은 동등한 의료 서비스도 제공된다. 현재 독일은 유럽 최대의 난민 수용 국가다. 총선을 앞두고 극우 세력으로부터 불만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독일은 난민 지원에 적극 나선다. 그 이면에는 과거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역사 의식이 있다. 독일 오라니엔부르크>

27일 오전 9시. 작센하우젠 유대인 수용소.

이곳은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약 21마일(약 35km) 떨어진 오라니엔부르크다.

수용소로 향하는 길엔 다소 의외의 풍경이 펼쳐졌다. 수용소가 평온한 주택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다. 살벌한 느낌과는 전혀 거리가 먼 풍경이다.

지금은 일요일 아침이다. 놀이터에서 부모가 그네에 탄 아이들을 밀어주는 모습이 눈에 띈다. 대문 입구를 빗자루로 청소하는 노인도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독일의 과오를 일상에서 매일 접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수용소로 들어섰다. 한눈에 담아내기 힘들 정도로 드넓고 휑한 공터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이 과거 수용소였다는 것은 금세 알 수 있다. 수용소를 둘러싼 회색빛 높은 담장이 시야를 막아선다.

담장 중간 중간에 우뚝 선 탑 들은 감시대다. 공터 한 편에는 막사 서너 개가 허름하게 모양만 갖춘 채 역사의 흔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안내원은 "사람들은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로 '아우슈비츠'를 꼽지만 독일의 역사학자들은 이곳을 가장 잔인하고 가혹했던 곳으로 평가한다"며 "이곳은 생체실험이 진행됐던 곳으로 1936년 세워진 뒤 1945년까지 20만 명 이상이 수용됐으며 그중 절반 이상인 10만 명이 잔인하게 죽어간 곳"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던 장소로 들어갔다. 하얀색 타일이 붙은 수술대는 가운데 배수구가 있다. 분명 몸에서 흐르는 피가 그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곳에 잠시 손을 대보았다. 하얀색 타일에서 전달된 싸늘함이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안내원은 "생체실험으로 죽은 사람은 수레에 실려 이곳 지하에 있는 시체실로 옮겨졌다"고 소개했다. 분위기 탓일까. 창 밖의 아침 햇살이 왠지 야박하게 느껴진다.

잿빛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휭'하는 바람소리만이 귓가를 때린다. 침묵속에 때때로 나오는 한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저 담벼락 너머의 세계를 가슴에 소망으로 둘 수 있었을까. 높디높은 감시탑은 그러한 질문을 암묵적으로 묵살해버렸다.

안내소 직원 라후엔 씨는 "이곳엔 유대인만 오는 게 아니다. 실제 독일 학생들도 견학용으로 많이 방문하는 장소"라며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은 독일 역사 교육의 핵심이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다음 세대에게 왜 독일이 앞으로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역사의 과오는 비단 이곳에서만 접하는 게 아니다. 독일 내에는 작센하우젠 수용소를 비롯한 다하우, 부켄발크 등 세 곳의 수용소가 그대로 보존돼있다.

독일의 심장 베를린 도심에도 참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심엔 유대인 추모비가 있다. 짙은 회색의 콘크리트 비석들(2711개)이 단 하나의 문구(살해당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로만 설명되는 곳이다. 독일 정부는 이곳을 3500만 유로(약 40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다.

비석 사이사이로 들어가 걸어다녀봤다. 높이는 제각각. 무미건조할 정도로 짙은 콘크리트 색만 가득한 공간이다. 비석엔 아무런 글귀도 찾아볼 수 없다. 베를린의 흐린 하늘마저 더 어둡게 만들어버리는 단절의 시간이었다.

안내원 바슈티안 씨는 "이곳은 브란덴부르크문, 포츠다머 광장, 국회의사당, 프리드리히 거리 등이 인접한 베를린의 중심 지역"이라며 "시민들이 오가면서 매일 일상에서 이곳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미순 박사(베를린기독교대학)는 "독일은 2차 세계 대전의 책임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 때문에 타국에서 온 망명객에 대한 법률적 보장이 유럽 어느 국가보다 잘되어 있다"고 말했다.

역사에 대한 참회는 곧 미래를 위한 만회다. 독일의 난민 포용 정책은 그 지점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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