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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암 환자들 열악한 병실 찍어 고발 … 20년 뒤 가보니 개선돼 생존율 높아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의 스페인 사진가 티노 소리아노(62·사진).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스페인과 남미권에선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다. 그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사장 최정화)이 28~29일 주최한 ‘문화소통포럼 2017’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첫 한국 방문이라는 소리아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주요 활동과 사진과 관련된 평소 철학을 밝혔다.

스페인 유명 사진가 소리아노 #의료·유머 사진 찍어 언론에 게재 #유네스코 포토 대상 등 여러 번 수상 #“다이내믹 한국 어떻게 담을지 고민”

소리아노는 의료·여행사진을 주로 촬영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비롯한 뉴욕타임스·파리마치 등 유명 신문·잡지에 게재해왔다. 평소 관심사인 전통 의료 사진 촬영을 비롯한 개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방한 첫날엔 종로의 유명 한방병원에 들러 한약사들이 한약을 만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소리아노는 92년 처녀작인 ‘미래는 있다’(There is a Future)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바르셀로나 병원에 입원한 아동 암 환자들의 사진 16점이다. 대학생 때 병원 사무원으로 일한 경험 덕분에 병원·의료체계에 익숙했던 그는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아동 암 환자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소리아노는 “아동 암 환자들에게 지원되는 정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단 점을 알게 된 뒤 ‘이런 현실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찍은 것”이라며 “사진 보도 20년 뒤인 2012년 다시 이 병원에 가보니 아동 암 환자들의 생존율이 부쩍 높아졌더라. 내가 조금은 기여했단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티노 소리아노의 92년 처녀작인 ‘미래는 있다’. 바르셀로나 병원의 아동 암 환자가 도넛의 구멍으로 쳐다보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촬영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티노 소리아노]

사진작가 티노 소리아노의 92년 처녀작인 ‘미래는 있다’. 바르셀로나 병원의 아동 암 환자가 도넛의 구멍으로 쳐다보는 익살스러운 장면을 촬영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티노 소리아노]

소리아노는 유머스러운 사진도 촬영한다. 99년 세계사진보도재단으로부터 대상을 받은 ‘바르셀로나의 모나리자’(Mona Lisa in Barcelona)가 대표적 작품이다. 유명 미술작품의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바르셀로나 박물관 건설 당시 모나리자 카피를 옮기던 직원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마치 모나리자가 걷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지만 옆에 설치된 거울엔 그림을 옮기는 직원이 비춰져 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04년 멕시코 최고 권위의 사진상인 ‘렌테 데 플라타’를 수상했고, 2015년엔 유네스코 ‘휴머니티 포토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소리아노는 원래 교사가 되길 꿈꿨다. 대학서 교육을 공부한 그는 “교사는 20~30명의 학생을 가르칠 수 있지만 사진기자가 되면 수백 명에게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단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졸업 직전에 대학을 자퇴한 소리아노는 4~5년간 사진 촬영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2박3일 간 지낸 한국에 대한 평소 생각도 전했다. “미국은 극우 성향의 지도자(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워요. 난민이 추방될 위기에 처하는 등 어떤 면에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최근 큰 정치 변동이 있었지요. 다이내믹한 한국의 풍경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아낼지 고민입니다.(웃음)”

아내와 슬하에 16살 딸을 둔 소리아노는 “불안정한 수입의 사진작가로 살며 많은 돈을 벌진 못 했지만,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겐 곧 천국”이라며 활짝 웃었다.

글=조진형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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