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통상압박 철강업계에 일자리 늘리라는 산업부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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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소아산업부 기자

이소아산업부 기자

‘동상이몽(同床異夢)’. 정부와 철강업계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악수를 나눴지만 각자의 ‘속내’는 극명하게 달랐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내 주요 철강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지난달 24일 장관 취임 이후 한달여 만이다. 이 자리에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등 업계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다.

국내 업체들 수입규제로 큰 타격 #한·미 FTA 재협상 발등의 불인데 #주무 부처는 정부 시책만 강조

이날 간담회가 끝나고 양측은 모두 ‘충분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것을 과연 공감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철강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발 통상압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외국산 철강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우리는 (미국이 적자를 보는) 심각한 자동차라든지 철강의 무역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압력을 가하더니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밀어붙였다.

지난 7월 현재 국내 철강·금속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88건의 수입규제를 당해 수출 품목중 규제 타격이 가장 크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국의 철강 반덤핑 관세가 심각한데 FTA 재협상으로 철강 쪽에 또 다른 패널티가 주어진다면 타격은 엄청날 것”이라며 “정부와 만나 이 문제를 공동 대응해야 할 필요가 컸다”고 전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도 간담회를 마치고 취재진에게 “통상 문제가 논의 중에 큰 것이었다”며 “산업부에서 미국의 (철강수입 제재) 상황을 살펴보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문제까지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측 반응은 업계의 고민과는 온도차를 보였다. 백운규 장관은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업계가 이번 정부의 일자리 창출 의지를 공감하고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첨단 고부가 산업으로 전환하고 국민적 요구인 일자리 창출과 대·중소 철강사간 상생협력 등을 위해 힘을 모아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기업들은 줄줄이 일자리 보따리를 풀어냈다. 포스코는 올해부터 4년간 매년 15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올해 경기불황을 이유로 채용 규모를 지난해 1100명에서 500여명 정도로 줄일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3배로 늘린 것이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압박을 부인하기 힘든 대목이다.

간담회에서 현대제철은 올해 지난해보다 12% 늘어난 430명을, 동국제강은 3배 늘어난 115명의 신규직원을 뽑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로선 간담회 한 번에 2045명의 신규 일자리 실적을 올린 셈이다.

업계에선 주무부처가 국내외 경제·정치적 악재에 부딪힌 철강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부 시책만 강조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철강 업계가 일자리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철강업종을 해운·조선·건설·석유화학과 함께 ‘5대 취약업종’으로 지정해 사실상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표 기업들은 직원수를 줄이고 비핵심 계열사와 투자 지분 등을 매각하는 등 경영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오랜만에 정부와 업계가 만났으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맞지 않나. 정부가 하고 싶은 얘기, 듣고 싶은 얘기만 나눌거면 서로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이소아 산업부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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