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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모든 닭을 푸른초원서 키우기는 불가능" 가금연구소장의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온 나라가 ‘살충제 계란’ 공포에 휩싸였다. 정부가 최근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52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중 31곳(63%)이 살충제 성분이 나와선 안 될 친환경 인증 농가여서 충격은 더욱 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장기적으로 케이지(cage·철제 우리)로 상징되는 밀집 사육장을 평평한 땅에서 닭들을 풀어 키우는 동물복지농장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산란계 농장의 사육 환경을 개선해 문제가 된 닭진드기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계란 이력 추적제 도입과 친환경 인증제 개편, 농업인 인식 제고 등도 대책으로 거론된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 #"생산자가 어렵게 동물복지농장 택하면 #소비자도 기꺼이 비싼 계란 사먹어야" #수십배 땅 필요하고 '1000원 계란' 나와 #산란계 전체가 방사로 가는 건 불가능 #"동물복지와 생산량 고려한 '개방형 케이지'로 유도" #농장주에게만 책임 돌려선 답 찾기 어려워 #생산자·유통업자·소비자 사회적 합의 필요 #"우리 동네선 안 된다"는 님비 극복도 과제

과연 정부 대책대로 하면 닭진드기는 사라질까. 이 지독한 해충을 죽이려고 더 지독한 살충제를 뿌려대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살충제 계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문홍길(53)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에게 물었다. 문 소장은 산란계 농장주들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돌리기엔 국내 축산업이 가진 구조적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사육 환경 개선’이라는 정부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계란 생산자부터 유통업자·소비자까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문홍길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정부 대책을 따르면 닭진드기를 없앨 수 있나.  

진드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지구상에 모기와 파리가 없어지는 날이 올까. 진드기는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숙주가 있으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이 있으면 침대에 진드기가 생기고, 닭이 있으면 닭진드기가 생긴다.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생물이 아마 곤충일 거다. 다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드기) 개체 수를 줄이자는 것이고, 이 접근 방법이 사육 환경 개선이다. 농식품부에서 얘기하는 것은 동물복지형 축산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거다. 일반인들은 아마도 그림 같은 푸른 초원에 닭을 풀어 놓은 방사형 복지를 생각할 것이다. 근데 가능할까.  

지난 16일 경기도 양주시 한 양계장 모습.임현동 기자

지난 16일 경기도 양주시 한 양계장 모습.임현동 기자

불가능한가.

보통 케이지에서 닭을 기르는데 농가에 가면 8단, 10단 이렇게 돼 있다. A4 한 장에 닭 한 마리가 올라가 있고, 그 닭들이 8층이나 10층짜리 아파트에 사는 거다. 방사형으로 간다면 예를 들어 10단이라고 하면 A4 10장 면적을 옆으로 깔아야 된다. 또 옆으로 퍼져도 땅바닥 면적이 A4 한 장 크기면 복지가 아니잖나. 규정은 세부적으로 정해야겠지만 A4 5장 정도에 닭 한 마리를 키우겠다고 하면 50배의 땅이 필요하다. 한국에 산란계가 7000만 수 정도 되는데 이게 가능할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일부 농가는 가능하지만 한국 산란계 전체를 푸른 초원에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면 계란 1개 가격이 700원이 넘을 거다. 지난해 겨울 조류인플루엔자(AI)가 터져 계란 30개 한 판에 1만원이 넘었다. 계란 하나에 330원 꼴이었는데 ‘계란값 대란’이라고 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계란을 수입했다. 계란이 700원이 되면 국민 대부분은 수입한 계란을 먹어야 할 거다. 닭을 풀어서 기르는 농가를 보면 기껏해야 5000~1만 수 정도다. 일반 케이지 농가가 평균 6만7000 수다. 크게 하는 농가는 100만 수가 넘는다. 완전 방사형은 전체 생산량의 일부만 가능하고, 전 국민이 700~1000원짜리 계란을 사 먹을 수는 없다.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장 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 있다.최승식 기자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장 창고에 출하가 보류된 계란들이 쌓여 있다.최승식 기자

대안은 없나.

유럽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동물복지와 생산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개방형 케이지(Aviary system)다. 쉽게 설명하면 케이지에 각각 닭이 들어 있는데 현관문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공터가 있는 것처럼 케이지와 케이지 사이에 복도가 있다. 닭들이 케이지 밖으로 나와 바닥으로 내려와 놀다가 다시 케이지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Aviar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큰 닭장’이라고 돼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옛날식) 케이지가 없다’는 의미에서 ‘케이지 프리 시스템(cage free system)’이라고 얘기한다. 개방형 케이지로 바꿀 때 닭 한 마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0.11㎡ 정도다. 지금 일반 케이지가 0.05㎡이니 2.2배 정도 된다. 유럽에서는 이런 사육 환경을 계란에 표시한다. 예를 들어 1번은 완전 방사, 2번은 개방형 케이지(Aviary) 이런 식이다. 물론 가격은 다르다. 우리도 결국 복지 쪽으로 가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는 쪽으로 갈 것이다.

21일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이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한 산란계 농장을 방문해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1일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이 계란에서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 한 산란계 농장을 방문해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그럼 방사형이든 개방형 케이지든 바로 바꾸면 되지 않나.  

대한민국 산란계 전체가 방사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케이지 방식에서 동물복지 쪽으로 가되 시장 논리나 소비자 선택에 의해 점차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산란계 농장이 가지고 있는 케이지를 다 뜯어내고 그걸 설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아파트 전체를 모두 부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비자들이 이런 복지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을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먹는 비율이 높아지면 생산도 자연적으로 따라가는 거다. 이렇게 변해 가는 쪽으로 정부가 유도할 것이고 또 유도해야 한다.  

DDT 성분이 검출된 계란. 프리랜서 공정식

DDT 성분이 검출된 계란. 프리랜서 공정식

‘살충제 계란’ 사태는 왜 생겼다고 보나.

정부에서 허가한 살충제라도 용법·용량에 맞춰 써야 한다. 닭진드기를 잡는 살충제는 10여 종이 허가를 받았다. 이 중에는 닭을 모두 빼내고 빈 계사에만 뿌려야 하는 게 있고, 닭이 있는 상태에서도 뿌릴 수 있는 게 있다.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것은 세 가지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허가된 살충제를 썼더라도 용량 이상으로 썼거나 둘째는 빈 계사에 뿌려야 하는데 닭이 있을 때 뿌린 경우다. 셋째는 작물에만 사용이 허가된 살충제를 계사에 뿌렸을 수 있다.   

농장주들은 이런 사태가 오리라 예상 못했을까.

내가 만약 몇 만 평의 농사를 짓는데 풀이 너무 난다고 하자. 낫으로 베고 기계로 베도 감당이 안 된다. 그러면 독한 제초제에 대한 유혹이 있지 않았을까. 허가되고 안전한 방제(防除) 약제나 친환경 제재를 빨리 개발하면 좋은데,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닭진드기가 생존력이 너무 강해서다. 전문가들 얘기로는 영하 20도, 영상 56도에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피를 안 빨아먹어도 9개월간 산다고 그런다. 유충에서 성충이 되는 데 약 일주일이면 되고 일생 동안 알을 30~50개 낳을 정도로 번식력도 강하다. 게다가 닭은 오밀조밀하게 있어 더 잘 퍼져 나간다. 천연 물질을 쓰거나 허가된 약품을, 허가된 용법·용량대로 뿌려도 닭진드기를 잡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살충제를 쓴 농장주들은) 그래서 유혹을 받았을 거다. 정확한 건 공식적인 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살충제 검출 계란 유통량 추적 조사 및 인체 위해평가 결과 발표가 21일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최성락 식약처 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프리랜서 김성태

살충제 검출 계란 유통량 추적 조사 및 인체 위해평가 결과 발표가 21일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최성락 식약처 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프리랜서 김성태

문제가 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은 동물의약외품이면서 농약으로도 등록돼 있다는데.

농약으로 허가되고 사용 가능한 피프로닐은 최근 5년간 판매 실적이 없다고 한다. 동물의약외품으로 피프로닐이 들어간 살충제는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의 진드기를 잡는 데 쓰인다. 그런데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들은) 이것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 현장 수의사들 얘기로는 피프로닐 원재를 중국에서 몰래 수입해 판매한 것이 더 많을 거라고 한다. 비펜트린도 동물의약외품과 농약으로 등록돼 있다. 이 제품은 빈 계사에 치게 돼 있다. 그런데 (계란에서) 비펜트린이 검출됐다면 닭이 있는 상태에서 약을 쳤거나 빈 계사에 쳤더라도 너무 많이 치고 제대로 (계사를) 세척하지 않고 닭을 집어넣었거나 두 가지 개연성이 있을 수 있다.

플루페녹수론과 DDT가 각각 검출된 전북 김제와 경북 영천의 산란계 농장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인데.

이번에 살충제가 검출된 곳 중에 친환경 농장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친환경 축산물은 무항생제 축산물과 유기 축산물이다. 살충제가 나온 곳 대부분은 무항생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다. 무항생제 농가는 당연히 항생제를 안 먹인 농가다. 그리고 빈 계사나 그 주위에 살충제를 쓰면 안 되는 농가다. 그런데 그 농가에서 살충제가 나왔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살충제를 썼을 개연성이 있다. 일부 (부적합) 농가는 ‘(살충제를) 썼는데 불법인 줄 몰랐다’ ‘수의사가 권해서 썼다'고 얘기한다. 알고도 썼다면 제재가 필요하고, 모르고 썼다면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DDT는 전혀 다른 얘기다. 오래 전에 판매가 금지된 농약이다. 정부가 검출 경로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으니, 지금 섣불리 추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장.최승식 기자

살충제 성분이 발견된 경기도 남양주의 한 양계농장.최승식 기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에 대한 비난이 거센데.  

생산자가 (허가되지 않은) 살충제를 썼다면 ‘나쁜 사람’이지만, 마냥 그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싸게 많이 생산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도 살펴야 한다. 중간 유통비가 판매 가격의 절반 정도인 복잡한 유통 구조의 문제도 있다. 생산자의 과욕은 분명히 문제지만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근본적인 답을 찾기는 어렵다.  

근본적인 해법은 없나.

복지 계란을 생산해도 소비자가 안 사먹으면 생산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얘기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방사형 동물복지농장을 지으려 해도 땅이 (케이지 농장보다) 몇 십 배 필요하고, 아무리 복지농장이라도 우리 동네에 양계장이 들어온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길까. 또한 계란 하나가 700원, 1000원이 되면 과연 우리는 사먹을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님비(NIMBY, 지역이기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가축이 배설하는 분뇨를 토양이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육 밀도를 가져가면 냄새가 안 날 거다. 그러려면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에 적은 마리 수를 유지해야 하니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통업자는 중간에서 장난치지 말아야 하고 소비자는 기꺼이 (기존 계란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남의 동네에서 키운 복지 계란을 싼값에 먹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살충제 계란’은 어느 한 쪽만 건드려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있는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전경.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있는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전경. [사진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경북 고령 출신인 문 소장은 서울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동물자원학)에서 농학석사·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1990년 4월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 축산연구사로 공직에 입문해 국제기술협력과장과 국립축산과학원 영양생리팀장, 미국 농업연구원 상주연구원 등을 거쳐 2014년 3월부터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평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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