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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돌아온 덕종 어보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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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덕종 어보 반환식. 미국 시애틀박물관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앙포토}

2015년 4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덕종 어보 반환식. 미국 시애틀박물관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앙포토}

2015년 미국에서 돌아온 조선시대 덕종(1438∼1457) 어보(御寶)가 1924년 일제강점기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2년 전 국내 반환 당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을 기려 1471년 제작한 것이라고 발표했던 문화재청의 신뢰도와 행정 절차에 흠집을 남기게 됐다.

문화재청. 반환 당시에는 "1471년 제작" #성분 분석한 결과 1924년 재제작 확인 #국립고궁박물관서 조선왕실 어보 특별전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존호(尊號·임금이나 왕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릴 때 사용했다. 구리에 금을 입힌 덕종 어보는 손잡이가 거북 모양이다. 2년 전 미국 시애틀박물관에서 돌려받았다. 1924년 서울 종묘에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종 어보와 함께 사라진 5점 가운데 하나다.

올해 미국에서 돌려받은 문정왕후 어보. [사진 문화재청]

올해 미국에서 돌려받은 문정왕후 어보. [사진 문화재청]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18일 “지난해 덕종 어보의 성분을 비파괴 분석한 결과 해당 유물이 15세기에 만들어진 다른 어보에 비해 구리·아연의 함량이 높고 금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제작된 것으로 밝혀냈다”고 말했다. 덕종 어보의 제작 연대가 확정된 것은 1924년 매일신보 등의 기사가 계기가 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어보 5점이 분실돼 순종이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다시 만들 것을 지시한 것으로 기록됐다.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조선 왕조 때도 어보가 훼손·분실될 경우 공식적으로 재제작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덕종 어보 또한 종묘에 정식 위안제를 지냈기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모조폼이 아니다.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어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의 일 처리 방식이 도마에 올랐다. 2015년 반환 당시 1471년 제작된 것으로 공개됐고, 재제작 사실 또한 조사 이후 6개월이나 지난 뒤에 알린 꼴이 됐다.

 김 관장은 “2년 전에는 육안 감식으로는 연대를 측정할 수 없었고 1924년 어보 도난 신문 기사를 뒤늦게 접하게 됐다”며 “성분 분석 결과를 올 2월 문화재위원회에 알렸고, 문화제청 홈페이지도 관련 내용을 정정·공개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관련 사실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다른 유물을 외국에서 돌려받을 경우 외형 감식과 함께 성분 분석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옥으로 만든 현종 어보. 거북 모형 손잡이에 붉은 매들 끈이 달려 있다. [사진 문화재청]

옥으로 만든 현종 어보. 거북 모형 손잡이에 붉은 매들 끈이 달려 있다. [사진 문화재청]

 덕종 어보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일 개막하는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10월 29일까지)에서 공개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때 반환 받은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다.

 문정왕후 어보는 명종 2년(1547) 대왕대비였던 문정왕후에게 ‘성렬(聖烈)’이라는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것이다. 6·25를 전후해 미국에 유출돼 로스앤젤레스 카운 박물관에 소장됐으나 한·미 공조수사를 통해 돌려받게 됐다. 역시 미국에 밀반출된 현종 어보는 효종 2년(1651)에 현종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는 2014년 해외에서 환수해 온 유서지보·준명지보·황제지보 같은 조선·대한제국 국새와 고종 어보 등 조선 왕실 인장 9점도 함께 공개된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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