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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중소기업은 고용 창출의 ‘위대한’ 엔진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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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현 정부 경제정책방향의 출발은 소득주도성장이다. 중소기업 수가 전체의 99%이고 취업자의 88%나 되니 중소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분배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청이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정책설계의 출발점이 되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다.

기업수 99% 고용 88% ‘9988 신화’ #실제 고용은 70% 정도 차지할 뿐 #미국도 중소기업 육성 매달렸지만 #오래가는 양질 일자리 창출 한계

분배를 통해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확인되지 않은 미지의 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하고, 새로운 고용창출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신화(神話, myth)일 뿐, 사실이 아니다.

먼저 고용비중의 측면을 살펴보자. 한 기업체가 전국적으로 몇 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 개별 사업체 하나는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나 각 사업체의 합인 기업체는 사실상 대기업인 경우가 많다. 9988(중소기업 수가 전체의 99%이고,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 신화는 과거의 분류가 기업체가 아닌 사업체 분류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다.

또한 현행 통계의 기업 규모 분류방식에도 몇 가지 개선될 소지가 있다. 과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은 주로 피용자수 300명을 기준으로 했지만, 2015년 법 개정 이후에는 주로 매출액 기준으로 분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통상 하나의 기업은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산업분류와 더불어 기업 규모 분류가 복잡해진다. 향후 관련 통계가 개선됨에 따라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둔 가능한 범위에서의 통계분석은 9988이 잘못된 수치라는 점을 보여 준다. 법인만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전체고용의 70% 정도 차지하고 있으며, 1인 이상 피고용인 있는 기업을 기준으로 해도 77%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피고용인이 없는 1인 자영업자를 통계에 포함시키는 것도 9988에는 맞지 않다. 따라서 9988이 아니라 9970이나 9977 정도가 맞는 수치로 보아야 한다.

두 번째로 고용창출의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신화는 더구나 사실과 다르다. 과거 미국의 중소기업청은 새 일자리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창출된다는 믿음으로 중소기업을 ‘위대한 고용창출기계(Great American Job Machine)’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도 1993년 연두교서에서 “중소기업이 최근 10~15년 동안 새 일자리의 대부분을 창출했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혜택과 유인을 포함한다”라는 맞지 않은 표현을 한 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중소기업이 고용창출의 엔진이라는 주장이 실증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경제학 교과서 수준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이는 미국도 과거 통계의 분류와 해석을 잘못했으며, 중소기업은 고용창출과 소멸이 동시에 많이 이루어져 순증가는 그리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질의 일자리라 불리는 제조업의 경우,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미국 대기업이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53%, 사라진 일자리의 56%를 차지한다는 연구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는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더 오래 유지된다는 점도 밝혀졌다.

1970년대 말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라는 등소평의 말이 생각난다. 쥐 잡는데 고양이 색깔이 중요하지 않듯이, 일자리 창출에 기업 규모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원한다면 민간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은 업종별, 규모별로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정책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통상 고용창출의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빠르게 변화하는 업종에서 대기업보다 더 잘 적응하기 때문에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모든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중소기업 정책도 설계단계부터 보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반해 수립되기를 바란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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