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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재판관에 방 내주면…김이수 헌재소장 대행은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김이수(64)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소장 임명 국회 동의가 3개월째 미뤄지면서 헌재가 예상치 못한 고민에 빠졌다.

김 소장 대행과 이 후보자 집무실 골머리 #소장실 비었지만 '대행' 사용한 전례 없어 #"소장 임명 방식 안 바꾸면 문제 되풀이"

바로 재판관들의 ‘방 문제’다.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이유정(49)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김 소장 대행보다 먼저 취임할 경우 집무실 배정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집무실 없이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6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임명 동의가 늦어지면서 7개월째 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박종근 기자

6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국회 임명 동의가 늦어지면서 7개월째 소장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박종근 기자

서울 종로구 재동의 헌재 청사에는 재판관 정원(9명) 만큼의 집무실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일반 재판관의 집무실은 8개, 나머지 하나는 소장 집무실이다. 지금 비어있는 곳은 소장 집무실(301호)뿐이다. 지난 1월 31일 박한철(64)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뒤 197일째 비어있다.

헌재소장 집무실은 다른 재판관 집무실의 1.5배 크기다. 재판관 집무실 면적은 행정안전부령인 정부청사관리규정을 준용한다. 장관급 공무원의 집무실과 비슷한 165㎡(약 50평) 가량 된다. 각 집무실에는 재판관 이름이 붙어 있다.

9번째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유정 변호사. [중앙포토]

9번째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유정 변호사. [중앙포토]

김 소장 대행은 소장실과 같은 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305호)을 사용하고 있다. 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정미(55) 전 재판관도 퇴임할 때까지 자신의 집무실을 사용했다. 이 후보자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사무국이 있는 종로구 서린동의 서울글로벌센터 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해 청문회를 준비 중이다.

여야는 8월 중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김 소장 대행의 동의안 표결 문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달 25일 퇴임하는 양승태(69) 대법원장 후임자 인선이 본격화하면 김 소장 대행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헌재소장을 임명하려면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 이상 출석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재판관의 경우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치 않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대통령이 언제든 임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후보자의 임명 시기가 김 소장 대행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둔 2월 서울 재동의 헌법재판소. 3층과 4층에 재판관 9명의 집무실이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둔 2월 서울 재동의 헌법재판소. 3층과 4층에 재판관 9명의 집무실이 있다. [중앙포토]

2006년에도 집무실 배정 문제 불거져

이 후보자가 재판관에 임명돼도 소장 집무실을 제외한 재판관 집무실 8곳은 모두 주인이 있다. 당장 들어갈 집무실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김 소장 대행이 소장 집무실로 옮기면 해결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만에 하나 김 소장 대행의 국회 동의가 부결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1988년 헌재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소장 권한대행이 소장 집무실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2006년에도 헌재의 재판관 집무실 배정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효숙(66) 전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지명했을 때다. 전 전 재판관이 남은 임기 3년을 포기하고 사표를 내자 노 전 대통령은 그를 재판관으로 재임명하면서 동시에 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소장 임기 6년을 모두 채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6년 8월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업무 중인 모습. [중앙포토]

2006년 8월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업무 중인 모습. [중앙포토]

전 전 재판관의 기존 집무실은 후임으로 임명된 민형기 재판관이 사용하고 있었다. 소장 대행인 주선회 재판관은 자신의 집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 전 재판관이 소장 집무실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헌재는 주 소장 대행이 소장 집무실로 옮기고 전 전 재판관이 주 소장 대행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겨지진 않았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거센 반대로 전 전 재판관이 스스로 후보자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헌재 관계자는 “여분의 재판관 집무실을 설치하는 방법도 검토해봤지만 청사가 협소해 공간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독 헌재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헌재 소장을 현직 헌법재판관 중에 임명하도록 되어 있어서다. 이번처럼 소장 임명 절차가 장기화할 경우 집무실 배정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대법원장의 경우 판사·검사·변호사로 20년 이상 경력을 자격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장은 외부에서 충원하면 되지만 헌재는 쉽게 말해 밀어내기식이어서 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후임자에게 영향이 이어진다. 근본적으로는 소장 임명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개헌특위에는 헌재소장 호선제가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재판관들의 합의로 소장을 정하면 헌재소장의 임기나 자격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소장 호선제를 도입하면 ‘권한대행’을 떼지 못한 김이수 후보자 같은 사례가 앞으로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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