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충제 농가 인근 주민 “친환경 인증 … 한 판씩 사갔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5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진관리의 마리 산란계(알 낳는 닭) 농가.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됐다. 정문 옆 계란 보관창고에는 유통이 중단된 계란 수천 개가 판에 담긴 채 쌓여 있었다. 계란 창고 앞마당엔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용 약품 등이 가득 든 플라스틱 박스 2개가 놓여 있다. 인접한 닭장은 방역을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다.

현장통제 나선 남양주시 관계자 #“주인, 피프로닐인 줄 몰랐다 주장” #농가들 “해충 안 잡으면 닭이 죽어 #정부, 안전한 퇴치법 개발해 달라” #양계협 “검사 빨리 … 우려 없애야”

이날 오후 3시쯤 계란을 사기 위해 농가로 들어선 60대 주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싱싱한 계란을 사기 위해 5년 전부터 수시로 이 농가에 들러 계란 한 판씩을 사 갔는데 당황스럽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50대 농장주는 이날 오전 자신의 농장에서 팔려나간 계란을 긴급 회수하기 위해 도매상 격인 중간유통처 7곳을 찾아다니느라 농가를 비운 상태였다. 7만 마리의 닭을 키우는 이 농가에서는 하루 계란 생산량이 2만4000개 정도였고 2~3일마다 계란을 출하했다.

관련기사

현장 통제와 조사에 나선 남양주시 유기농업과 관계자는 “농장주는 ‘인근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사용했다. 피프로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남양주시 등은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면서 즉각 이 농가에서 출하한 계란의 유통경로 추적 및 회수 후 폐기 작업에 착수했다. 남양주시 측은 “최근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이 문제가 돼 지난달 말 마리 농가를 포함해 5개 산란계 농가에 닭 진드기 전용 구제제를 지급했다”며 “하지만 해당 농가는 시에서 지급받은 전용 구제제를 사용하지 않고 포천의 한 동물약품업체에서 무허가 약품을 구입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주민 황모(59)씨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로 알고 있는데 살충제 계란이 나왔다니 충격”이라며 “유통된 계란도 많다 하니 계란을 사 먹어야 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유럽에 이어 국산 달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정부가 3000마리 이상 대규모 산란계 농장의 달걀 출하 중단 및 전수 검사에 들어가자 농가들은 긴장 속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피프로닐이 나온 남양주 마리 농가와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경기도 광주시 우리 농가 주변의 산란계 농가들은 특히 긴장하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는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장이 모두 237곳이다.

포천시 신북면에서 닭 12만 마리를 키우는 하병훈(70)씨는 “출하금지 조치로 당장 오늘부터 생산되는 달걀을 모두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며 “검사 결과 이상이 없는 농가에 대해서는 정부가 다시 출하를 허락할 것으로 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하씨는 “이번에 검출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은 모두 닭에 기생하는 이나 진드기 등 해충을 없애기 위해 주로 축사 바깥에 뿌리는 살충제에 든 것”이라며 “해충을 잡지 않으면 닭이 죽는다. 정부가 살충제 사용만 억제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해충 퇴치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란계 농장이 많은 전남 지역 농가들도 검사 결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전남 지역에는 3000마리 이상 산란계 농가가 89곳 있다.

강진군 도암면에서 닭 9만여 마리를 키우며 하루 평균 3만여 개의 달걀을 출하하는 안영식(60)씨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달걀은 저온창고에 보관하면 되니 당장 피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 출하 중단 조치가 해제되고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재개하더라도 당분간 달걀을 사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김재홍 대한양계협회 경영정책국장은 “파리나 진드기 등을 박멸하는 과정에서 뿌린 살충제가 청소 단계에서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검출된 것으로 추측된다”며 “정부의 전수 검사가 신속하게 진행되고 소비자들의 우려도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양주·무안·포천·춘천=전익진·김호·최모란·박진호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