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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추적]바닷가에서 '익사' 위장된 남편·아버지 사인은? 알고보니 비정한 모자의 보험살인 드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월 22일 오후 4시19분. 충남 서천군의 한 바닷가에서 A씨(58)가 빠졌다는 신고가 119를 통해 접수됐다. 신고는 같은 시간 보령해양경찰서 상황실에도 접수됐다.

보령해경 수사관들이 익사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천의 한 바닷가에서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보령해경 수사관들이 익사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천의 한 바닷가에서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119구조대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A씨와 동행한 가족과 지인은 “물놀이를 하다가 빠져 숨진 것 같다”고 진술했다. 당시 물놀이에는 A씨 전 부인 B씨(53)와 아들(26), 지인인 보험설계사 C씨(55·여) 등 3명이 동행했다.

보험금 13억원 노리고 살인, "갯바위에서 미끄러져 빠졌다" 허위 진술 #보령해경, 모의실험 등 통해 '익사 어렵다' 결론… 증거 통해 자백받아

현장에 있던 가족과 지인을 조사하던 해경은 미심쩍은 점을 발견했다. 사고 지점이 익수할 만큼 수심이 깊지 않고 부검 결과 A씨 몸에서도 바위에 긁히는 등의 상처가 남아있지 않아서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 과정에서 A씨 이름으로 10억원이 넘는 보험에 가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A씨가 사고로 사망하면 보험금을 모두 전 부인 B씨와 아들이 수령하게 돼 있었다. 보험은 이날 동행한 설계사 C씨를 통해 가입됐다.

보령해경 수사관들이 익사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천의 한 바닷가에서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보령해경 수사관들이 익사사고가 발생한 충남 서천의 한 바닷가에서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하지만 B씨와 아들은 유가족인 데다 목격자라 수사가 쉽지 않았다. “유족에게 이래도 되느냐”는 반발도 나왔다. 보험설계사 C씨는 “A씨가 갯바위에서 미끄러진 뒤 물에 빠졌다”며 당시 촬영했던 물놀이 사진도 제시했다. 경찰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해경은 과학적인 근거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내기로 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물살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중간쯤의 시기였다. 사고가 발생한 시간을 역으로 추적한 결과, 사고지점은 수위가 성인 기준으로 허리보다 낮았다. 외부의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거나 자살이 아니고는 익사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양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물때와 조류의 흐름 등도 조사한 결과 숨진 뒤 떠밀지 않고는 사고 지점에서 익사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도 받았다. 직원들을 동원해 현장에서 여러 차례 실험도 했다.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는 범행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판단해서였다.

사건 당시 일행들이 A씨를 적극 구조하지 않았던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해경 조사에서 B씨와 아들은 구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여 간의 끈질긴 조사 끝에 해경은 지난 10일 오전 4시쯤 B씨와 아들에게서 “물에 빠뜨려 살해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보령해경 전경.

보령해경 전경.

조사 결과 B씨 등은 평소 A씨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고 가정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사고로 사망하면 13억원의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점도 범행동기로 확인됐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이들은 이미 3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상태였다.

해경은 B씨와 아들에게는 존속살해 및 사기 혐의를, 보험설계사 C씨에게는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보령해경 연홍석 수사과장은 “지난 한 달간 가용한 인력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했다”며 “자칫 사고로 종결될 수 있었떤 사건을 수사관들이 끈질긴 노력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보령=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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