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국타이어, 폐암으로 숨진 직원 유족에 1억 지급하라"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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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생산관리팀에서 근무하다가 유독물질에 중독돼 폐암으로 사망했다며 이 회사 직원의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이겼다. 타이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화학물질로 인한 사망에 대해 한국타이어의 책임을 인정한 사실상 첫 판결이다.

"근로자 안전 배려 의무 다하지 않아" #발병과 인과관계 인정…회사 책임 50%

서울중앙지법 민사63단독 정재욱 판사는 10일 고(故) 안모씨의 부인과 자녀 세 명이 한국타이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사는 안씨의 부인에게 1466만원, 세 자녀에게 각각 2940만원 등 총 1억28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993년 12월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안씨는 생산관리팀 등에서 일하다가 2009년 9월 유해물질 중독으로 인한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안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고 요양하던 중 병세 악화로 2015년 1월 사망했다.

안씨의 가족들은 “회사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해야한다고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같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정 판사는 먼저 한국타이어가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정 판사는 “한국타이어가 타이어 제조와 발암 사이의 연관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마스크 지급 및 배기·냉각 장치 설치 등을 한 점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다가 섭씨 40도 이상의 고온 환경에서 근무해 근로자들의 피로가 누적됐다”며 “‘삼진 아웃제’ 등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는 행위만으론 충분히 안전 배려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정 판사는 회사가 안전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안씨의 폐암과도 관련이 있다고 봤다. 정 판사는 “안씨가 입사 뒤 2년을 제외한 15년 8개월 동안 고무 흄(타이어 등 고무를 쪄서 제품을 만들 때 생기는 증기)에 많이 노출되는 공정 라인에서 근무했다”며 “안씨의 폐암 발병과 관련해 의학적인 다른 조건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작업 중 가장 많이 노출된 고무 흄이 폐암의 원인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판사는 “안씨가 비흡연자이고 가족력 등 질병과 관련된 다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2006년 5월~2007년 9월 사이에 안씨 외의 폐암 사망 근로자가 5명에 불과하고 안씨와 다른 근로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작업한 점 등을 고려해 한국타이어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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