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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옳지만 재정 대책은 못 미덥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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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31조원을 들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수십조원이 드는 복지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3800개의 비급여 진료를 몽땅 건보 급여로 바꾸고, 2~3인 병실에 건보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20조원 넘게 건보에 쏟았지만, 보장률이 63%를 넘어서지 못한 이유가 비급여 의료비 증가 때문이다. 그동안 해법 찾기에 골몰했지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손을 들었다. 이번에 내놓은 ‘선(先) 급여화-평가 후 교통정리’는 획기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모든 자기공명영상촬영(MRI)·초음파 건보 적용, 15세 이하 입원비 5% 부담 등도 필요한 것들이다. 현재 20조원의 건보 흑자가 쌓여 있고, 재정이 안정적이어서 개혁을 하기에 좋은 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보장성 강화의 다른 수레바퀴인 의료 전달체계 개편이 빠진 점은 아쉽다.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경쟁하는 이상한 체계를 바꿔야 보장성 강화가 작동한다. 비급여 진료가 대학병원 쏠림의 문턱 역할을 해 왔는데,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쏠림이 심화할 게 뻔하다. 동네의원·중소병원이 말라죽을 수도 있다. 이 대책도 함께 가야 하는데, 뭐가 급한지 한쪽 바퀴만 손댔다. 비급여 제로화도 쉽지 않다.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이상 의료기관이 늘리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자칫 돈만 쓰고 과거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

재정은 더 걱정이다. 2023년에만 이번 조치로 8조1000억원, 건보 부과체계 개선으로 2조3000억원이 들어간다. 저출산·고령화로 수입은 정체되고 지출은 자연적으로 증가한다. 기획재정부는 2025년 건보지출이 지금의 두 배로 는다고 추정한다. 이 정부가 건보 흑자 10조원을 남긴다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2000년 준비 없는 의약분업 때문에 이듬해 건보료를 20% 올린 적이 있다. 2023년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