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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절차적 정당성 계속 의심받는 탈원전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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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탈원전 정책의 첫 단추인 공론화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의심받을 만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급기야 어제 여야는 정부의 급전(給電·전력사용 감축) 지시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탈원전 정책 합리화를 위해 전력 부족을 사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급전 지시는 전기사용량이 피크를 찍을 때 절전을 유도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정부가 2011년 전력대란을 계기로 2014년 도입한 ‘급전’은 기업들이 전략 사용을 줄이면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절전을 유도하는 제도다. 그런데 정부는 전력이 충분하다면서도 7~8월 세 번에 걸쳐 ‘최대 수요 경신이 예상된다’는 등의 이유로 급전 지시를 내렸다. 여유 전력을 늘림으로써 전력이 넉넉하다는 근거로 삼고 나아가 탈원전 여론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7~2031년)에서 설비 예비율을 현재 22%에서 19%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원전 건설의 필요성을 낮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독일과 스페인의 전력 예비율은 100%를 넘는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큰데 그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원자력 연구개발을 해체 및 안전 쪽으로 전환하려는 것도 탈원전을 겨냥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실제 그렇게 되면 그간 4500억원이 투입된 4세대 원자로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의 연구 중단이 우려된다.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않는다고 했다. 공론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급전 지시를 내리고, 50년 넘게 쌓아온 원전 기술의 맥을 끊으려 해선 곤란하다. 세계 원전이 2050년엔 2배 이상 늘어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망도 현 정부의 예측과 배치된다. 논란이 많은 만큼 공론화 과정에서 차근차근 논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