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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할아버지가 어릴 적 듣던 옛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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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왼쪽부터 가장 오래된 한글 동화 ‘바보 온달이’가 실린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1913) 창간호. 최남선이 창간한 ‘아이들보이’(1913)와 최초의 한글 동화집 ‘조선동화대집’(1926).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왼쪽부터 가장 오래된 한글 동화 ‘바보 온달이’가 실린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1913) 창간호. 최남선이 창간한 ‘아이들보이’(1913)와 최초의 한글 동화집 ‘조선동화대집’(1926).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아이들을 높여서 부르는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최남선(1890~1957)이다. 1914년 발행된 잡지 『청춘』에서다. 1907년 한국 최초의 잡지 『소년』을 창간했던 그는 민족의 앞날을 이끌 어린이와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1913년 어린이잡지 『붉은 저고리』도 선보였다. 여기에 실린 ‘바보 온달이’는 현재 가장 오래된 한글 전래동화로 꼽힌다. 올해로 꼭 104년을 맞았다.

한글박물관 ‘전래동화 100년’ 전 #가장 오래된 작품은 ‘바보 온달’ #3대 전래동화집 171편 원문 #태블릿PC로 읽어볼 수 있어

‘바보 온달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로부터 1320년쯤 전에 지금 만주와 평안도 땅을 차지하였던 고구려라 하는 나라에 한 유명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 유명한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얘기다.

최남선은 같은 해 『아이들보이』(‘아이들 보게나’라는 뜻)에 전래동화 모집 공고도 실었다. 상금 20~50전을 걸고 옛 이야기 발굴에 나섰다. 일제강점기라는 불우한 시대를 열어갈 열쇠를 어린이에게서 찾은 셈이다. 그의 선구적 노력은 1923년 ‘어린이날’을 제정한 아동문학가 방정환(1899~1931)으로 이어졌다.

1926년은 한국 아동문학사에서 또 다른 이정표를 긋는 해였다. 최초의 한글 전래동화집 『조선동화대집』이 출간됐다. 교육자이자 국어학자인 심의린(1894~1951)이 ‘콩쥐팥쥐’ ‘착한 아우’ ‘도깨비 돈’ 등 전래동화 66편을 모았다. 『조선동화 우리동무』(한충 편찬·1927), 『조선전래동화집』(박영만·1940)과 함께 3대 한글 전래동화집으로 꼽힌다.

8일 서울 용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개막한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내년 2월 18일까지)는 우리 동화의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본다. 동화책·민담집·음원 등 총 188건 207점이 나왔다. 민족의식 고취에서 출발한 한글 동화의 거의 모든 것을 살펴보는 자리다. 김미미 학예연구사는 “미공개 희귀본이 많다. 3대 전래동화집에 실린 171편 원문 전체를 디지털화해 관객들이 태블릿PC로 직접 읽어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획전은 우리 동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어린애들이나 읽는 ‘가벼운 얘기’를 넘어 우리 민족의 슬기와 해학이 담긴 ‘문화의 원형’으로서의 전래동화를 주목한다. 예컨대 『조선전래동화집』에서 편저자 박영만(1914~81)은 “전래동화는 수 천백 년에 걸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고 들으시고 생각하시고 한 흙의 철학이고, 흙의 시고, 거룩한 꽃이다”라고 밝혔다.

전시는 입체적이다. 시청각 자료에도 신경을 썼다. 전래동화를 수집해온 서정오(62) 작가 인터뷰 영상, 배우 김복진(1905~50)의 구연동화 앨범 ‘혹 뗀 이야기’(1934), 윤석중(1911~2003)이 노랫말을 붙인 동요 앨범 ‘흥부와 제비’(1937) 등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 효·우애·사랑 등 전래동화 8개 주제를 직접 체험해보는 코너도 마련했다.

모처럼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손잡고 즐길 만한 전시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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