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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한수산 소설은 인물들 고난에 초점 … 징용피해자 직접 만나 역사 묘사 충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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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책으로 읽는 영화 - 군함도 

군함도
한수산 지음, 창비

일본 나가사키(長崎) 남쪽 해상에는 하시마(瑞島)라는 인공 섬이 있다. 해저 1000m에 이르는 석탄 수직갱과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이 섬은 일본 근대화의 거점임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섬은 하시마 대신 ‘군함도’로 더 자주 불렸다. 섬 전체를 둘러싼 높은 방파제의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섬은 강제징용 되어 죽음 같은 노동을 이어간 조선인 노동자들에 의해 ‘지옥도’라 불렸다.

최근 이 섬을 배경으로 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가 화제다. 개봉 첫날에만 100만 관객이 들었다. 극장 스크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경의선 열차의 운행시간표보다 영화 상영시간표가 더 촘촘하다는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도 돌고 있다. 영화는 어린 딸과 함께 섬에 오게 된 악사 이강옥(황정민)의 생존기와 종로 깡패 최칠성(소지섭)과 오말년(이정현)의 애정선, 독립운동가 윤학철(이경영)을 구하기 위해 잠입한 광복군 소속 박무영(송중기)의 분투 등 개별적 서사들이 만나 군함도 탈출이라는 공동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영화 ‘군함도’는 대규모 탈출에 관한 영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군함도’는 대규모 탈출에 관한 영화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는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군함도』(2016)가 맴돌았다. 영화 ‘군함도’에 시각과 청각을 압도하는 웅장함이 있다면 소설 『군함도』에는 역사에 충실한 묘사들이 있다. 아울러 영화가 민족-민중을 교차시키며 주제의식을 단선적으로 획득하고 있다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고난을 통해 자아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을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강제징용이라는 비극적 사실에 함께 기원을 두고 있지만 소설과 영화는 이렇게 조금 다른 풍경으로 전개된다. 두 창작물 중 어느 것이 과거의 사실을 더 기계적으로 재현해냈느냐 하는 관점은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잊혔던 과거의 재현과 복원을 통해 현재 독자-관객들의 삶과 인식에 얼마나 큰 화두를 제시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한수산 작가는 징용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오며 27년 만에 소설 『군함도』를 완성시켰다. 이 긴 시간의 끝에서 한수산 작가는 아래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국가 혹은 역사가 뒤엉킨 거대한 불행, 끊임없는 불평등과 삶 그 자체를 뒤흔드는 압제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가야 하는가. 이 소설의 소재는 그것을 저에게 물었고, 이 문제는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아닙니다. 인간은 이것을 감내하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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