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터뷰] 국산 맥주, 치킨과 함께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세계맥주대회 우승한 MBA 출신 박상재씨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공동 창업자인 박상재씨가 본인이 만든 맥주 장비 앞에 섰다. 발효조나 냉각용 기계 등 10여 개 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박종근 기자]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공동 창업자인 박상재씨가 본인이 만든 맥주 장비 앞에 섰다. 발효조나 냉각용 기계 등 10여 개 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박종근 기자]

성공한 덕후. 수제 맥주 전문점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공동 창업자 박상재(29)씨가 딱 그렇다. 2014년 KAIST 경영대학원(MBA) 재학 시절 홈브루잉(Home brewing·집에서 맥주 만들기)을 알게 되면서부터 공부는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만 연구했다. 2016년 또 다른 맥주 덕후이자 국제 공인 맥주 소믈리에인 김태경(39)씨와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를 열었다. 그리고 2017년 6월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린 세계맥주양조대회(NHC·National Homebrew Competition)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맥주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대회엔 30개 분야의 1만여 맥주가 출품됐다. 박씨는 ‘사워에일(Sour Ale)’에서 우승했다.

KAIST 재학 때 맥주 제조에 빠져 #입문 얼마 안 돼 각종 대회 휩쓸어 #수제 맥주 전문점 돕다 공동 창업 #SNS 입소문 타고 손님 줄이어 #50대 이상 남성들에겐 고소한 맛 #20대 여성들엔 상큼한 맥주 내놔 #취하지는 않고 배만 부른 맥주? #소주보다 높은 22도짜리도 있어

◆덕질을 직업 삼다=덕질은 박씨 인생의 원동력이다. 무선 조종 자동차(RC카)에 빠졌을 땐 태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출전해 세계 랭킹 40위까지 올랐다. 야구에 빠졌을 땐 야구용품 매장을 하기도 했다.

숱한 덕질의 역사 중에도 맥주는 박씨가 가장 깊게 빠진 아이템이다. 어릴 때부터 관심은 손으로 직접 뭔가 만드는 데 있었다. 수제 맥주는 직접 맥주 설비를 만들고 그 기계로 맥주를 만들어내는 이중의 제작 과정을 거치니 더욱 매력적이었다. 장비에 따라 맛이 확확 달라지는 걸 바로바로 확인하는 묘미도 있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 있는 발효조(맥주 숙성 기계)나 냉각용 기계 등 10여 개의 맥주 장비가 그의 작품이다.

지난 6월 세계맥주양조대회에서 우승한 후 환호하는 박상재씨의 모습.[사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홈페이지]

지난 6월 세계맥주양조대회에서 우승한 후 환호하는 박상재씨의 모습.[사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홈페이지]

◆입문 5개월 만에 대회 휩쓸다=홈브루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는 ‘맥주 잘 만드는 사람’으로 입소문이 났다. 2014년 5월 국내 최대의 홈브루잉 동호회인 ‘맥주만들기동호회’가 주최한 KHC(Korea Home brewing Contest)에 나가 3위로 입상하면서부터다. 불과 5개월 만이었다. 덕후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같은해 8월 서울 신사동의 수제 맥주 전문점 ‘쓰리매너티’ 대표가 맥주 제조를 제안했다. 재미 삼아 만든 그의 수제 맥주는 대박이 났고, 다른 수제 맥주집뿐 아니라 양조장에서도 “도와달라”는 제안이 쏟아졌다. 그는 고객 성향에 따라 레시피를 조절했다.

이렇게 영역을 확장하는 틈틈이 국내 대회에서 15차례나 우승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김태경씨를 만났다. 국제 공인 맥주 소믈리에인 김씨는 그가 심사위원을 맡은 대회마다 우승을 휩쓰는 박씨를 눈여겨보다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2016년 4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를 열었다. 김씨는 대표를, 박씨는 맥주 장비 설계를 맡았다.

어메이징 브루잉컴퍼니 매장에는 무려 100여 개의 맥주 탭이 있다.[사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홈페이지]

어메이징 브루잉컴퍼니 매장에는 무려 100여 개의 맥주 탭이 있다.[사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홈페이지]

◆베짱이라 돈을 번다=박씨는 스스로를 ‘천성이 탱자탱자 노는 베짱이’라고 소개했다. MBA를 마친 후 다른 졸업생들처럼 국내외 기업에 취업하지 않은 것도 정시 출근과 빡빡한 근무 환경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박씨는 “내가 워낙 돈 쓰고 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남들이 언제 돈 쓰는지도 알 수 있다”며 성수동 본점 매장의 야외 공간을 예로 들었다. 인조잔디가 깔린 이곳은 고객들이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공유하면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를 대중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그는 “대학 때 선선한 바람 부는 잔디밭에 누워 술 마시는 게 정말 좋았는데 그걸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매장에 처음 온 사람이 깜짝 놀랄 만한 게 있어야 한다는 영업 원칙을 갖고 있다. 성수 본점에 맥주 탭을 무려 100여 개나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웬마한 수제 맥주 전문점은 기껏해야 15~20개의 탭이 있는데 이 정도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산 맥주는 치킨과 찰떡궁합=맥주 덕후답게 맥주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바로잡는 남다른 시각을 많이 얘기했다. 그는 “맥주는 취하지 않고 배만 불러서 싫다고들 말하는데 이는 맥주를 모르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맥주 중엔 알코올 도수가 22%로 소주보다 높은 것도 있고 색깔도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하단다.

‘맛없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대량 생산하는 국산 맥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의외로 “세상에 맛없는 맥주는 없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치킨이랑 먹을 때 가장 맛있는 맥주이자 사전 속 정의를 제대로 구현한 정답”이라며 후한 점수를 줬다. 국산 맥주는 라이트 라거(light lager)에 속하는데 바로 이 맥주의 사전적 정의가 ‘금색 빛에 풍미는 가볍고 탄산이 많아 청량하면서 쓰지 않은 맥주’이기 때문이다.

[S BOX] 한국에서 흑맥주가 맥 못추는 까닭은

${dataMap.artCont}‘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공동창업자인 박상재(29)씨는 본인이 만든 기계로 뽑아낸 수제 맥주에 대한 일종의 부심(자부심)은 없다. 오히려 기존의 대기업 대량생산 한국 맥주를 극찬한다.

박씨는 “소비자 조사를 해보면 고객들은 ‘더운 여름날 갈증 해소용’이라거나 ‘치킨과 함께’‘한 잔 쭉’ 등을 선호한다”며 “그런 기호에 딱 맞게 많은 시설과 설비를 들여 쓰지 않은 라이트 라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에서 유독 흑맥주가 인기 없는 이유도 풀어놨다.

우선 술과 안주를 함께 먹는 한국식 음주 문화 때문에 맥주 그 자체를 즐기는 수제 맥주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흑맥주가 대표적이다. 흑맥주야말로 음식과 페어링하는 술이 아니라 맥주 자체를 즐겨야 하는 술이라서다. 흑맥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수제 맥주 역시 라이트 라거인 기존 국산 맥주에 비해 향과 맛이 진하기에 페어링하는 음식도 고민이다. 짜고 매운 한식 특유의 자극적인 음식은 수제 맥주와는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