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 30대 대기업의 비정규직 현황이 추가됐다.
지난달 31일부터 청와대 홈페이지 ‘일자리 상황판’ 코너의 ‘대한민국 일자리 현황’에는 ‘30대 기업 간접 고용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30대 기업의 총근로자수 ▶기간제+시간제(비정규직) 근로자수 ▶소속 외(파견직) 근로자수가 개별 기업별로 2014년부터 올해까지 정리돼 있다.
당초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일자리 상황판’에는 ▶고용률 ▶실업률 ▶청년실업률 및 청년체감실업률 ▶사업체 규모별ㆍ근로형태별 연간 근로시간 등 한국 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계가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달 14일부터는 상황판에 30대 기업의 취업자수를 보여준 데 이어 지난달 31일부터는 개별 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현황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자리 상황판에 보여주는 현황은 계속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여주는 내용은 청와대뿐 아니라 일자리위원회, 고용노동부 등과 협의해서 정해진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이 상위 30대 그룹에 대한 현황을 볼 수 있게 하라는 지시에 따라 만들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24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일자리 상황판 설치 시연식을 하면서 “일자리의 경우에 우리나라 고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그게 상위 10대 그룹이 될지 상위 30대 그룹이 될지, 그런 대기업들, 재벌 그룹의 일자리 동향을 개별 기업별로 파악할 수 있게 하라”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부분은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추이가 드러나게끔 (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와 일자리위원회 설명에 따르면 일자리 상황판에 개별 기업의 비정규직 일자리 통계가 들어가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런 통계를 보여주기 시작한 시점이 공교롭다. 지난달 27~28일 이틀 동안 문 대통령이 14대 기업과 오뚜기의 총수 또는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호프 미팅’을 한 직후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 둘째날인 지난달 28일 인사말을 통해 “대통령이나 새 정부에게는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혹시 (일자리 중심, 소득주도 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패러다임의 전환이 경제와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를 살릴 방법이 없다”며 “새 정부의 경제 철학을 기업인들이 공유하기를 요청하며, 그 목표를 이루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기업들이 잘 따라달라는 요청이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인들은 이런 새 정부의 방침에 보조를 맞추며 청와대를 향해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계약직과 파견직 4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CJ가 방송 제작과 조리원 등 간접고용 근로자 3008명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 LG 등은 협력사를 위한 기금과 펀드를 늘리기로 했다. 청와대 행사장에서도 참석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협력업체와의 상생 ▶신규 일자리 창출 방안 등에 관한 계획을 문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인과의 진솔한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일자리 상황판에 개별 기업의 비정규직 현황을 포함시킨 걸 놓고 “결국 과거 정부처럼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말이 상황판이지 실제론 기업들이 분기별로 공시하는 자료다. 그런 만큼 야당에선 “대통령이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숫자만 세고 있으면 공무원들은 그 숫자의 노예가 되고 기업에는 커다란 정치적 압박이 된다. 보여주기식, 권위주의적 숫자 행정의 전형”(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이란 비판을 이미 내놓고 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